[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콘월 포트아이작(Port Issac)
콘월 여행 전, 곧 콘월로 떠난다는 우리에게 남편의 영국인 지인이 ‘포트 아이작(Port Issac)’이라는 마을을 추천했다. 지난 편에서 다룬 ‘키넌스 코브(Kynance Cove)’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라는 단어를 알려준 그 영국인이다.
포트 아이작이 어떤 마을인지는 잘 모르지만 콘월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충분치 않은 외국인인 우리가 ‘현지인 추천 여행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콘월에서 가볼 곳’ 목록에 바로 추가! ‘포트 아이작’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을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과 함께, 문득 알록달록한 색감이 떠올랐다. 왜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정확한 촉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문득문득 떠올리면 소담하게 밝고 경쾌한 색으로 기억되는 포트 아이작이다.
포트 아이작은 콘월 북쪽 해안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같은 북쪽 해안이지만 세인트 아이브스보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깊은 만이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선박을 보호해주어 천연 항구로 발달한 포트 아이작은 일찍이 중세시대인 14세기부터 어업이 활발했고, 주변의 내륙 지역에서 경작한 곡물을 선박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하는 소규모 해상 교역 항구였다. 항구의 규모는 작지만, 콘월 내륙의 농업 지역과의 접근성이 좋고, 콘월에서 상대적으로 동쪽에 있기 때문에 대규모 항구가 있는 브리스톨 해협과도 가까워 주변 지역의 무역을 아우르는 교역 중심지로써의 저력이 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이끈 대규모 산업 방식의 효율성을 따라갈 수 없는 지방의 소규모 도시들의 운명이 그렇듯, 포트 아이작도 현재는 어업이나 교역이 쇠퇴하고, 소수의 어부들만이 어업 활동에 종사하며 전통 어업 방식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대신 관광 산업이 이 마을의 주요 경제 활동이 되었다. 역시나 ‘현지인’이 괜히 포트 아이작을 추천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포트 아이작의 매력은 무엇일까?
섬나라인 영국은 나라를 빙 둘러 많은 어촌이 있을 것이다. 이미 다녀온 세인트 아이브스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바닷가 마을 중에서도 포트 아이작이 특별한 것은 중세시대의 어촌 마을의 전형적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시대에는 항구 대부분 천연 항구였다. 그러다 보니 항구는 자연스레 만과 협곡이 있는 지형에 형성되었고, 고깃배의 그물처럼 자신들의 삶을 항구에 엮은 어촌 사람들은 항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항구를 중심으로 빙 둘러 방사형으로 마을을 넓혀갔다.
도시 계획이나 심미적 차원을 고려할 여유도 없었던 생계 중심의 생활은 그저 땅의 생김 그대로, 또 자연 재해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높은 곳, 골목 사이사이 제각각 집터를 세웠다. 자연스럽게 마을 내에는 구불구불한 경사로가 생겼고, 그 경사로 위로 바다에서 낚아 올린 수확물이 마차나 수레에 실려 옮겨졌다.
그렇게 자연에 적응한 삶의 흔적이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경사 있는 거리, 항구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 방사형의 마을 구조로 남아, 포트 아이작의 정체성이 되었다.
또한 포트 아이작은 18~19세기 콘월 스타일의 건축물로도 유명한데, 거리의 상점이나 주택 등이 실제 18~19세기에 지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중세 시대의 마을 구조는 그대로 유지를 해도 소금기 가득한 해풍에 삵아가는 건축물까지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18~19세기경 마을이 무역업 등으로 번창하면서 천연 스레이트 지붕과 화감암 벽 등 방수와 내구성이 뛰어난 콘월 스타일의 건축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중세 어촌 마을의 전형을 간직한 18~19세기 마을’로 평가를 받으며 포트 아이작은 마을 전체가 국가에서 지정한 보존지구로 관리되며 많은 여행자들을 부르고 있다.
‘Port Issac’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낯선 도로를 달리다 목적지가 적힌 표지판을 발견하면 어차피 처음 방문하는 곳인 것은 매한가지인데도 무수한 인파 속에서 아는 이를 만난 듯 그리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낯선 마을을 지나 아는 이름을 발견한 반가운 마음이 더해져서인지 표지판에 적힌 글자의 모양도 예쁘게 느껴졌다.
항구 인근의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포트 아이작’의 정체성이 서린 항구로 향했다. 마을 바깥을 두르는 해안 절벽 위의 좁은 돌담길을 바다와 나란히 걷다 보면 돌담 아래로 항구가 보이고, 이어 항구보다 높은 지대에 형성된 포트 아이작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 나왔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부터 범상치 않은 구조에 ‘현지인 강력 추천’ 포트 아이작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그런데 이럴 수가! 소담한 매력으로 눈길을 끌어당기는 거리의 건물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 마을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포트 아이작 항구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내리막 길을 걸어 항구에 도착했건만, 눈앞에 펼쳐진 예상치 못한 풍경에 우리는 살짝 당황했다.
일단 포트 아이작은 정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작은 항구였다. 그리고 썰물이 빠져나가 바닥이 완전히 드러난 좁고 긴 항구에는 걸어서 방파제까지도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바닷물이 없었다. 방파제 안쪽의 바닥에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배들이 썰물이 빠져나가기 전에는 여기도 바다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배보다는 더 육지에 가까이 있지만 그래도 바다의 바닥임이 분명해 보이는 곳에 주차된 차들은, 물론 물때를 잘 알고 있는 주인을 두었겠으나, 우리의 눈에는 생경할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놀라움과 어색함의 첫인상을 남긴 포트 아이작 항구는 썰물을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음에도 어딘가 황량해 보였다.
이렇게 큰 조수간만의 차는 포트 아이작의 특징이다. 밀물 때 이렇게 육지 안쪽 깊숙한 곳까지 물이 들어오는 점 때문에 바지선 등을 이용한 작업이 용이해서 포트 아이작이 중요 항구로 발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밀물일 때와 썰물일 때의 항구 풍경의 극명한 차이는 포트 아이작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담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극적인 영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안되겠다. 우리도 밀물이 들어오는 저녁 때 다시 오자.”
여기까지 와서 황량한 썰물만 기억하고 돌아갈 순 없다. 마침 다음 목적지가 포트 아이작에서 멀지 않은 틴타겔 성. 오후에 틴타겔 성을 둘러본 후에, 다시 포트 아이작으로 돌아와서 밀물이 차오른 극적인 대비를 직접 목도하리라 다짐하며 항구로 내려 오느라 급하게 훑고 지나간, 구비구비 경사진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발길을 옮겼다’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항구의 끝자락부터 마을은 시작됐다. 포트 아이작은 구석구석 정말 아담하고 개성 넘치는 예쁜 마을이었다.
우선 항구 주변으로 중심 상점들이라 할 수 있는 펍, 기념품 가게, 포트 아이작에서 잡은 해산물을 사용하는 레스토랑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항구와 가게들이 많은 만큼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곳이다.
항구에서 왼쪽으로 뻗은 길을 걸어 들어가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비정형화된 건물들이 늘어선 포트 아이작의 마을 길이 본격적으로 나왔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좁은 간격으로 지어진 건물들, 자연 재해로 불어날지도 모를 바다를 피해 높은 경사진 비탈로 이어지는 마을.
슬레이트 지붕을 머리에 인 건물들은 하나 같이 다 다른 모습으로 울퉁불퉁했고, 마을 길을 향해 슬며시 발을 내밀 듯 저마다의 각도로 들쭉날쭉 서 있었다. 보통의 영국 도시들이 도로 양쪽으로 가지런히 집을 이어가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비교를 위한 영국 다른 도시들의 거리 풍경)
정돈된 거리의 정갈함은 없지만, 통일성이 없다는 것으로 통일성을 갖춘 포트 아이작의 거리는 생동감이 있었다. 촘촘하게 켜켜이 쌓은 돌담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집들, 혹은 흰색이나 연회색 또는 파스텔 톤의 밝은 색 외벽으로 밝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건물들이 서로 명암의 대조를 이루며 생동감에 경쾌함을 더했다.
두 가지 스타일 모두 콘월 스타일인데, 콘월 주변의 돌들을 이용해 쌓아 올린 돌담 형식의 외벽은 관리와 보수가 쉽고 경제적이라 실용성을 우선시했던 콘월의 전통적 방식을 잘 보여주는 유산으로 인식되어 특히나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흰색의 외벽은 돌담으로 쌓은 벽에 ‘화이트워시 (Whitewash)’라고 불리는 석회 기반의 도료를 칠한 것으로 이는 콘월뿐 아니라 바닷가 마을 건축물의 특징이기도 한데(대표적으로 산토리니가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로부터 실내 온도 낮게 유지하고, 짜고 습한 공기로부터의 방수와 오염 방지에도 효과적일뿐 아니라 배를 타고 멀리 나갔던 어부들이 어둠 속에서도 쉽게 마을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오로지 생계와 실용성만을 위해 짓고, 칠한 것들이 이제는 작위적이지 않아 더욱 진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하얀 벽에 난 작은 문만 바라보아도 어여쁘고, 작은 집에 붙여준 이름에도 ‘바다’가 묻어나는 작은 어촌 ‘포트 아이작’만의 풍경으로.
좁은 거리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긴 시간 이곳에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들을 환희에 찬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나는 조금 재미난 눈빛으로 마을을 감상했다. 건물들의 밝은 파스텔 색감 때문인지, 어린 아이의 서툰 그림 같은 울퉁불퉁한 거리의 윤곽선 때문인지, 혹은 뜨거운 여름의 볕 때문인지 문득 포트 아이작이라는 공간이 꾸덕하고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델과 그레텔>의 마녀가 만든 마을이었다면 한입 베어 물어 달콤함까지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진짜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앞에 나타났다. 여행지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났다면 먹어야지! 게다가 이렇게 ‘콘월적인(Cornish)’ 예쁜 돌담의 아이스크림 가게라면. 아이스크림 인심이 얼마나 좋은지 자신들의 얼굴 크기만 한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아이들도 포트 아이작의 달콤함을 즐겼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는 여행지의 맛을 선사했으니, 이번엔 어른의 맛을 느끼기 위해 항구 근처 펍(Pub)에 들어갔다. 2층짜리 펍은 내부가 꽤 넓은 편이었는데, 공간 낭비 없이 구석구석 알뜰하게 놓인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이미 꽉 들어차 자리가 없었다. 작은 마을이라 가게가 많지 않기도 했으나, 마을의 크기에 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진짜 인기 여행지인가 보다.
맥주를 내려주는 바(Bar) 바로 옆 창가 윈도싯(Window Seat) 자리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였다. 맥주를 주문하고 한숨 돌리며 바라보는 등뒤 창문 아래로 포트 아이작 항구가 보였다. 열린 창문으로 하얀 햇살과 바람이 들어오고, 항구 위로 뻗은 초록 언덕과 그 아래 고급스러운 저택들, 항구의 맨 바닥에서도 즐거운 사람들이 여름의 한때를 보여주고 있었다. ‘간신히’ 잡은 자리인 줄 알았는데 ‘특별한’ 자리였다. 이런 특별한 자리에서 마신 맥주맛은 두말하면 잔소리. 다른 일반 테이블 자리가 없음에 조금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맥주를 마시며 남편과 소곤소곤, 어차피 주위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한국어인데도 소리를 낮춰 포트 아이작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복잡하긴 하지만, 이렇게 앉아 마시는 맥주도 좋네~”
“그러네. 날씨도 좋고. 예쁘네. 그런데 음... 포트 아이작이 예쁘긴한데,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일 정도인가?”
“그건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추천할 정도로 엄청난 곳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모르는 영국인들의 감성이 있나? 이것이 외국인의 벽인가?”
“그럴지도, 하하. 지금까지 다닌 도시들이랑은 진짜 다른 느낌이긴 해. 아기자기 예쁘고 독특한 느낌이 무슨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고, 그냥 막 기분이 좋다. 이래서 포트 아이작으로 오나 봐.”
마을 거리 구석구석 독특하고 예쁜 포트 아이작은 일부러 만들어둔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바, 이 포트 아이작은 진짜로 드라마 세트장이었다. 일부러 지은 세트장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영국의 장수 인기 TV 시리즈 <Doc Martin>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2004년부터 2022년까지 영국에서 방영이 된 TV 시리즈 <Doc Martin>은 까칠한 런던의 의사가 작은 어촌 마을로 내려가 마을 담당 의사가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사회성이 부족한 주인공과 그와 대비되는 다정한 마을 사람들이 부딪히고 어우러지는 과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내어 아주 긴 시간 영국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포트 아이작 항구 주변이 극의 중심 공간으로 나오는데, 이곳 특유의 건물과 슬레이트 지붕, 좁은 골목길 풍경 등이 아름답게 담겨 포트 아이작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 중 하나였다고 한다. 뒤늦게 발견한 또 하나 반가운 사실은 우리가 콘월적인 달콤함을 맛 봤던 아이스크림 가게도 <Doc Martin>을 촬영한 장소였다는 것.
솔직히 마을이 아담하게 예쁘긴 해도 그렇게 강력추천할 정도인가 갸우뚱했는데, 인기 드라마의 촬영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약 20년에 가까운 아주 긴 시간 동안 방영하며 영국인들에게 존재감과 따뜻함이 남달랐을 드라마라면 더욱. 포트 아이작의 항구와 골목골목을 쉼없이 거닐며 눈과 카메라에 담던 수많은 영국인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감동으로 포트 아이작을 거닐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기쁨으로 가득찼었나보다. 덕질의 기쁨으로. 하하하.
포트 아이작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또 다른 팬심으로 ‘피셔맨즈 프렌즈(Fisherman’s Friends)’라는 음악 그룹도 있다. (알고보니 포트 아이작이 문화컨텐츠의 성지였다!)
‘피셔맨즈 프렌즈’는 포트 아이작의 어부들이 결성한 아카펠라 그룹으로, 실제 주민들이 부르는 바다 노래(Sea Shanty)를 전통성과 진정성을 유지하되 음악성과 대중성을 높여 편곡한 곡들을 부른다. 매주 포트 아이작 항구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공연으로 시작했던 패셔맨즈 프렌즈는 점차로 포트 아이작의 명물로 자리잡아 갔고, 외부로 입소문이 나면서 2010년에는 대형 음반 회사와 정식 계약을 맺어 상업 음악 시장에 진출해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2019년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Fisherman’s Friends>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영화가 제작된 이후 너무 유명해진 탓에 작은 마을에 과도한 관객이 몰려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안전 문제 등이 발생해 이제 피셔맨즈 프렌즈 정기 공연은 중단되었고, 매년 봄에 열리는 ‘Port Isaac Shanty Festival’나, 때때로 사전안내 없이 즉흥적으로 열리는 공연에서 그들을 만나 볼 수 있다고 한다.
피셔맨즈 프렌즈의 시작이었던 정기 공연은 사라졌지만, 이 포트 아이작에 피셔맨즈 프렌즈가 심어준 음악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지금도 여름 주말이면 작은 규모의 축제가 아직도 열려 콘월 특유의 공동체 감성과 어촌의 전통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미리 공연 정보를 알아본 뒤 포트 아이작을 찾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찾아온 저녁.
잠시 이웃 동네를 구경한 뒤 다시 포트 아이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항구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걸어 마을로 들어서자 밀물이 가득 차오른 포트 아이작이 눈에 들어왔다.
방파제 앞까지 거닐던 사람들은 어느새 뭍으로 올라와 여행지의 흥겨움을 이어갔고, 바닥에 기울어져 있던 배들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쓸데없이 차주를 걱정했던 빨간차도 안전하게 뭍으로 올라와 있었다. 하하.)
오전에 처음 본 황량한 썰물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흔들었구나 싶었다. 물이 가득 찬 포트 아이작은 낮에 마을 아트샵(Art Shop)에서 보았던 그림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포트 아이작’ 하면 떠올리는 상징적인 풍경이었다.
“다시 와서 보길 정말 잘했네. 다시 한번 안녕, 포트 아이작!”
항구 바로 앞의 해산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흐르던 라이브 노래가 이들의 ‘바다 노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보이는 항구에는 이제 해가 거의 비치지 않았다.
아스라이 생기가 옅어 지는 여름의 저녁하늘은 진한 한낮의 하늘과는 다른, 잔잔한 여유와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저녁하늘빛이 연하게 비친 포트 아이작의 밀물 위에 패들보트와 카약을 탄 사람들이 동동 떠다녔다. 종일 뜨겁게 타올랐던 태양은 하루를 마치고 쉼을 위해 떠나지만 사람들에겐 한가로운 여름 저녁도, 포트 아이작의 밀물을 즐길 시간도 아직 한참 남았다.
수백 년의 묵묵한 삶이 '문화'가 되어, 포트 아이작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콘월 ‘포트 아이작(Port Iss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