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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물(well)’의 도시, 웰스(Wells)

[런던 빼고 영국여행] 영국 잉글랜드 웰스(Wells)

by 노현지


학교 방학이나 연휴 등을 이용해 스코틀랜드와 콘월 등으로 떠났던 ‘여행자 모드’가 아닐 때의 보통 날의 생활은 영국이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주로 글을 쓰고, 집 청소를 하고, 밥을 해 먹었다. (음식 배달이 우리나라처럼 잘 되지 않은 데다 외식비 물가가 높은 영국이라 오히려 밥을 해 먹는 데 쏟는 시간은 한국에서보다 더 길었다.) 며칠에 한번씩 장을 보러 바스(Bath) 시티 센터에 가서 아름다운 조지아 시대풍의 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이벤트라면 이벤트.

이렇게 일상적인 일들로 하루를 보내다가 가끔 날씨가 무척 좋은 것 같은 예감이 들 때면 남편과 둘이 바스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짧은 소풍을 가거나 교외의 펍에서 맥주를 마셨다. 같이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과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하는 시간이 모처럼의 데이트 같아서 먼 곳의 유명 여행지로 떠나던 순간만큼이나 즐겁고 설렜다.

그렇게 데이트 삼아 가볍게 훌쩍 다녀온 곳들 중 한 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스(Bath)에서 차로 약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는 ‘웰스(Wells)’, 우리 말로 하면 ‘우물’혹은 ‘샘’이라는 뜻의 특이한 이름을 가진 소도시가 있었다. (하긴 ‘목욕(Bath)’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 ‘우물(Wells)’이 특이할 건 뭐람. 하하.)


< 바스(Bath)에서 멀지 않은 '웰스(Wells)' ( 출처 : 구글 지도) >


잉글랜드 남부에 자리한 ‘웰스(Wells)’에는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마르지 않는 세 개의 샘(Wells)이 있고, 그 샘에서 유래해 지명도 ‘웰스’가 되었다.

지금처럼 담수화나 관개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물’은 목숨과 직결되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자연스럽게 ‘물’을 구할 수 있는 샘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고, 이런 배경으로 웰스 또한 고대부터 사람들이 샘 근처에 모여서 살았던 인류의 거주 역사가 깊은 곳이다.

특히나 웰스 지역에는 이 귀한 샘이 세 개나 있었고, 각 샘에서 솟는 물의 양도 풍부했다. 물이 넉넉하고도 끊임없이 ‘퐁퐁퐁퐁’ 솟는 이 지역은 자연스레 고대부터 대대로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 ‘물’은 기독교에서도 신성하게 여겨졌다. 성경 전반에서 물은 하나님의 능력, 생명, 구원 등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세로 접어들어 영국에 초기 기독교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약 8세기경), 풍요로운 샘이 ‘세 개’나 있는 웰스 지역은 기독교 입장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신성한 물(샘)’에 더하여 숫자 ‘3’은 기독교에서 완전함, 신성함, 충만함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존재 방식 자체가 삼위일체-성부(아버지)와 성자(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기 때문에 매우 신성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숫자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 웰스에는 8세기부터 기독교의 초기 교회가 세워졌고, 이후 ‘신성한 샘(Holy Wells)’을 기반으로 기독교적 입지를 견고하게 다진 웰스는 10세기경에는 주변 서머싯(Somerset) 지역을 종교적으로 아우르는 교구(웰스 교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나의 교구 아래에는 여러 개의 하위 교회들이 있고, 그 교구를 대표하는 주교가 교구의 중심에 머물며 하위 교회들을 관할한다. 교회 중심이었던 중세시대에 이곳의 권한이 컸다는 뜻이다. 이어 12~13세기에는 초기 교회 자리 위에 웰스 대성당(Wells Cathedral)이 들어서며 웰스는 더욱 권위 있고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 웰스의 중심 '웰스 대성당' >


사실 지금까지 영국에서 여행을 다닌 런던, 옥스포드, 요크, 맨체스터, 리버풀, 에딘버러 등등 영국 여행지 대부분에 대성당이 없는 곳이 없고, 기독교적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중심으로 발전한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동네마다 대성당은 다 있는 거 아닌가? 대부분의 지역이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역사와 유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위에서 나열한 지역들은 대부분 큰 규모의 도시들이다. 또한 위에서 나열하지는 않았더라도 대성당이 있는 지역들 역시, 현대에는 위상이 달라졌을 수는 있으나 당시에는 영향력이 컸던 도시들이 대부분이다. 대성당은 보통 이렇게 정치적, 행정적, 경제적, 혹은 군사적 중심지로써 인근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심 도시에 세워지기 마련이고, 대성당을 보유한 도시가 교구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웰스는 아주 특별하다. 대성당이 있는 다른 대규모 도시들에 비해 웰스는 현재 인구가 12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1가구 당 4인 가족을 기준으로 30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1개의 인구가 12000명 정도 된다.)

과거에는 컸던 규모가 현대의 산업 재편으로 작아진 것이 아닐까?

아니다. 웰스는 대성당을 건설하던 당시인 12세기에도 대성당을 보유한 교구의 중심이 되기에는 인구가 수 천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으며, 종교시설 외에는 달리 중심적 도시 역할을 수행할 요소들이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신성하고 성스러운 ‘샘(Wells)’에서 시작된 종교적 상징성만으로 소머싯 지역 교구의 중심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았던 바스(Bath) 역시 소머싯에 속해 웰스 교구 영향력 하에 있는데, 역사적으로 내내 바스가 웰스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현재의 인구 역시 바스 인구가 9만 정도로 웰스의 인구보다 약 7~8배 정도 크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어진 온천(Roman Bath)과 수도원(Bath Abbey)이 있고, 상업도 발달했던 바스는 12세기 초 이미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바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교구의 중심 역할까지 가져와 진정한 ‘중심 도시’가 되고 싶었을 터. 바스는 소머싯 지역 교구의 중심을 웰스에서 바스로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영향으로 잠시 바스가 교구 중심이 된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웰스에 ‘웰스 대성당’을 지으면서 이 ‘교구 다툼’은 웰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바스는 교구의 명칭에 ‘Bath and Wells’라고 바스의 이름을 넣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이 교구명은 현재까지 이렇게 쓰이고 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그렇게 찬양했던 ‘광천수의 치유력’도 ‘샘의 신성력’을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이처럼 오직 종교적 기능에 충실한 기독교의 마을 웰스는 특히, “영국에서 가장 작은 ‘City’ 중 하나”라는 타이틀로 인지도가 높다. 영국에서 쓰는 ‘City’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시’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겠다. 영국에서 ‘City’는 전통적으로 왕실에서 특정 지역에 내리는 명예적 칭호인데, 중세시대부터 19세기까지는 대체로 대성당이 있는 교구의 중심 지역에 ‘City’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에도 명예적 칭호로써의 ‘City’를 새롭게 받는 지역들이 있으며, 과거보다는 조금 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복잡하니, 설명은 여기까지...^^;;)

기독교가 중요했던 과거에 ‘City’라는 칭호를 받은 지역의 위상이 남다를 것은 당연했을 테지만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진 지금도 ‘City’라는 칭호가 의미가 있을까? 답은, Yes!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진 지금도 ‘City’라는 칭호가 있는 도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전통이 있는 도시라고 인식이 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관광, 상업 등에 여전히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 영국의 명예로운 'City' 순위 (출처: yougov.co.uk) >



그렇기 때문에 “영국에서 가장 작은 ‘City’ 중 하나”인 웰스에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기독교가 세상의 진리였던 중세시대 영국에서 ‘신성한 세 개의 샘’을 기반으로 초기 교구가 형성되었던 ‘Holy’ 웰스, 작은 규모이지만 오직 종교 하나만으로 교구의 중심이 된 ‘City’ 웰스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이지만, 역사와 종교에 관심이 있는 많은 영국인들과 유럽 여행객들에겐 잉글랜드 남부 여행을 할 때 바스, 스톤헨지 등과 묶어서 방문하곤 하는 도시다.






< 고즈넉하고 아담한 웰스 거리 >


작지만 신성한 ‘웰스(Wells)’는 전체적으로 고즈넉하고 아담한 소도시였다.

한 눈에도 역사가 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펍에 눈도장을 찍고 일단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 고즈넉한 웰스(Wells) 거리와 오래된 펍(Pub) > >


‘신성한 샘’이 마르지 않는다는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하듯 길 한 쪽 배수로에 맑은 물이 졸졸졸 얇게 흘렀다. 천이나 시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도로에 물이 흐르는 도시는, 내가 여행을 다닌 지역 중에서는 없었다.

“오, 길가에 물이 그냥 흐르는구나. 괜히 웰스(Wells)가 아니네.”


< 마을의 중심가 도로의 한쪽편을 따라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


물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광장이 나왔다. 마침 마켓이 열리는 날이라 광장은 물건을 진열한 가판대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시장’이라는 장소가 갖는 특유의 감성 때문에 지금 막 도착해 처음 만난 웰스라는 도시가 정겹게 느껴졌다. 어쩌면 광장의 초입을 예쁘게 장식해준 꽃가게 때문에 마음이 활짝 열렸을지도 모르겠다.


< 물길을 따라 중심 광장이 보인다 >
< 광장 초입을 향기롭게 장식하는 꽃가게 >


꽃가게 뒤편, 광장의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었다. 광장으로 이어진 길 한 쪽 배수로를 촉촉하게 적시며 흐르던 물이 이 분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마을 광장에 고고하게 솟아 있는 분수의 물은 나중에 설명할 더 근원적이며 깊은 샘에서 보통의 사람들의 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광장의 샘으로 끌어온 것으로, ‘웰스’가 ‘웰스’이도록 해준 신성한 세 개의 샘 중 하나로 여겨진다.


< 웰스 중심 광장에 세워진 분수, '신성한 샘' 중 하나 >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 마을 광장에서 정말로 끊임없이 물이 흐러내리는 웰스. 지금은 각 가정마다 수도가 있어 소중함이 덜 하겠지만, 기원전의 역사에서부터 존재했던 이 맑은 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왔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 마을 광장의 샘으로 모아 함께 어우러지게 했을지를 상상하니 괜히 벅찬 마음으로 웰스 광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늘 이곳의 사람들은 마켓 때문에 모였겠으나, 마켓이 이 광장에 자리를 잡게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샘’이 있을 것이므로, 오늘 이 광장의 활기는 웰스 샘(Well)의 생명력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도시의 근원적 감상도 잠시, 나는 곧 분수를 등지고, 마켓의 중심에 서서 가판대 위에 펼쳐진 다양한 물건들과 맛있는 음식들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하하... 찡긋)


< 작지만 다양한 물건/음식들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던 웰스 광장 마켓>


이런 곳, 즉 이국적인데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충만한 로컬 마켓에서는 ‘쓸 데 없는 것’도 ‘꼭 가져야만 할 것’처럼 착각하기 일쑤이기 때문에 항상 지갑을 조심해야 한다. 이미 인간의 심리적 소비의 문제점을 깨닫고 조심할 준비가 되어 있던 나는 숱한 착각을 이겨내고, 앞으로 정말 잘 쓸게 될 것만 같은 작은 올리브전용 포크 6개와 그릭요거트를 떠 먹으면 정말 맛이 배가될 것 같은 나무 스푼을 샀다. 정말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하하... 머쓱)


< 웰스 마켓에서 사온 나무 스푼과 올리브용 포크 >


마켓이 열리는 광장 옆에는 웰스의 대표 명소, 신성한 종교의 도시 웰스다운 역사적인 장소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소머싯 지역 ‘바스&웰스’ 교구를 대표하는 주교(Bishop, 고위 성직자)의 거주 공간인 ‘비숍스 팰리스(The Bishop’s Palace, 주교의 궁전)’가 중세시대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웰스를 찾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웰스의 인기 명소 ‘비숍스 팰리스(The Bishop’s Palace, 주교의 궁전)’ >


설명을 조금 보태자면, ‘비숍스 팰리스’는 웰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세 시대에는 다른 모든 교구의 중심에도 주교의 거주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다른 용도로 쓰였거나, 파괴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비숍스 팰리스’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들 중에서도 웰스의 비숍스 팰리스는 특히나 보존상태가 우수해서 유산으로써 더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특히 웰스의 비숍스 팰리스는 본래의 외관도 다른 지역의 교주 주거공간들과 차별적이었다. 마치 중세의 성처럼 훨씬 으리으리하고, 견고하다.

중세시대가 배경인 영화에서 성 주변을 빙 둘러 물이 있고, 성문 앞의 도개교를 통해서만 성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웰스의 비숍스 팰리스는 규모는 작지만 그런 중세의 성과 꼭 닮았다.


< 해자의 수호를 받는 웰스 '비숍의 팰리스' >


견고한 성벽을 쌓은 단단한 궁전 주변을 해자(성 주변을 둘러싼 물을 해자라고 한다.)가 수호하고 있는 웰스의 비숍스 팰리스는 중세 시대 교회의 막강한 권위와 또 그 힘만큼 외부적 위협도 많아 주교의 공간을 철저하게 방어해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흘러갔고, 종교는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으니, 우리는 백조가 노니는 해자 너머로 웰스의 비숍스 팰리스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한낮의 데이트를 즐겼다.


< 비숍스 팰리스를 두른 해자 위에 떠 있는 백조와 오리들 >


광장을 포함해 마을의 일상 공간에서 비숍스 팰리스로 들어가려면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첫 번째 문에서 해자 앞까지는 무료로 개방되어 있고, 해자를 건너 진짜 궁전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해자 너머로 비숍스 팰리스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소풍을 즐겼다고 말한대로 우리는 굳이 궁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일단 학교에 간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 바스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그사이 마을 구경과 점심식사까지 마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더하여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해자 주변 공간이 이미 너무 아름다웠고, 웰스 시민이나 여행자들이 공원처럼 자유롭게 오가며 휴식을 즐기기 모습 자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궁전의 해자 주변의 공간에는 평일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갔다. 해자 주변의 벤치들이 대부분 먼저 온 사람들로 차 있었다.


<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는 '비숍스 팰리스'의 첫 번째 문 >
< '비숍스 팰리스'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넓고 푸른 잔디밭이 넘쳐난다 >
< 무성한 나무는 쉬어가기 딱 좋은 휴식의 공간 >
< 잔디밭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
< 피아노 연주를 하는 예술가 청년 >


잔디 밭에서 피아노를 치는 예술가 청년은 배경음악을 담당했는데, 키보드도 아닌 진짜 피아노는 과연 어디서 난 것인지, 이곳에 원래 있던 것인지, 설마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나중에 사진을 찬찬히 보다가 피아노 아래에 바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와우~! )

그리고 이어지는 쓸데 없는 호기심들. 잔디에 홀로 덩그러니 누워있는 아저씨는 휴식 중인지, 취침 중인지. 그 옆의 젊은 여성분과는 아는 사이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이라기엔 가깝고 아는 사이라기엔 먼 거리인 데다, 나라면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곳 바로 근처에서 저렇게 대자로 눕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괜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나 무슨 상황이건 각자의 방식으로 잔디를 즐기는 ‘정원의 민족’ 영국 사람들의 자유로움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진짜 '비숍스 팰리스' 안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 (유료) >


물론 들어가 보지 않은 궁전 안에 더 좋은 무엇인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일단 궁전 안에 있어서 내가 보지 못한 확실한 한 가지가 있었다.

웰스의 세 개의 샘 중 마을 광장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남은 두 개 중 하나가 비숍스 팰리스 내부에 있는 정원에 있다고 했다. 이 궁전 정원의 샘이 웰스 샘의 실질적 시발점이라고 하여 살짝 고민이 되었으나, 궁전 내부 정원의 샘에서 솟아난 물이 궁전 주변 해자를 채운다고 하기에 샘물의 신성력은 해자를 바라보며 대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해자 밖에서만 머물렀다. (참고로, ‘세 개의 샘’이 있었다는 전승기록은 있지만 현재 고고학적으로 웰스의 세 번째 샘의 위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 궁전 오른편 해자를 따라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많다 >
< 벤치에서 근사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


굳이 궁전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 궁전의 오른편 해자 주변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 시간 때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도 조금 전 마켓을 구경하며 점 찍어 둔 가게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중세 느낌의 풍경을 바라보며, 또 자연의 미풍 속에서 먹는 점심이라니. 이보다 호사스러운 식사가 또 있을까. 식당에서 지불해야 하는 가격의 절반이지만 맛은 결코 절반이 아닌 음식 덕분에 더욱 만족스러운 데이트가 되었다.


< 광장 마켓에서 사온 점심. 맛도 분위기도 최고였다 >
< 벤치 뒤편 담벼락 위 꽃도 이날의 데이트처럼 어여쁘다 >



영국 여행에서 성당은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이미 너무 많이 본 탓도 있고, 종교적으로 큰 뜻이 없는 영향도 있어 주로 외부에서 구경을 하는 편이었지만 웰스 대성당은 내부까지 들어가 보았다. 웰스는 이 대성당으로 반석 위에 오른 도시였으므로 둘러봐야 할 것 같았다.

비숍스 팰리스와 함께 웰스의 대표 볼거리인 '웰스 대성당(Wells Cathedral)'은 12세기 초기 영국 고딕 양식을 가장 제대로 보여주는 영국 최초의 대성당 중 하나라고 한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기독교 초기부터 신성하게 인식된 웰스에 있는 성당이라는 점이 웰스 대성당을 더욱 신성하고 기품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 영국 초기 고딕 양식의 정수 '웰스 대성당' >


‘초기 고딕 양식의 정수’라는 타이틀답게 천장에서도 역사가 묻어나는 웰스 대성당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높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비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 것은 성당 안에 고요하게 번지는 성스러움 때문이었을까. 테이블 위 자리마다 놓인 성경책은 준비가 되지 않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약간의 성금을 내고 한쪽 벽에 준비된 초에 불을 밝혔다. 성당에 잘 들어가지 않지만 들어가면 꼭 하는 일이었다.


< 웰스 대성당 내부 >
< 성당에 들어가면 꼭 밝혀보는 초 >


경건한 고즈넉함은 외부 공간에서도 이어졌다. 담 아래 핀 연보라색 라벤더를 닮은 꽃이 웰스 대성당이 품은 긴 시간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성당 뒤편에서는 예수님의 동상도 만났다. 대부분 십자가에 못 밖힌 힘든 예수님의 동상만 보다가, 비록 가시나무 관을 들고 있긴 하지만, 온화하게 웰스 대성당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동상을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비숍스 팰리스 해자 앞 공원에서도 그렇고, 대체로 웰스에서 느낀 감상은 편안함인 듯하다.


< 웰스 대성당 외부 >


짧은 웰스 소풍 및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광장으로 오기 위해 걸었던, 한 쪽으로 흐르는 물이 촉촉하게 길을 적시던 거리를 되돌아 걸으며 마을의 골목 골목을 구경했다. 광장 주변에 비해서 조용한 마을의 골목은 대단한 이 도시의 역사와 별개로 소박한 소도시의 일상적 삶이 담긴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예쁘다는 것이 늘 신기했다. ‘다르다’는 것은 대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같은 시선으로, 우리나라의 골목골목을 찾는 외국인들도 우리의 삶이 담긴 공간을 이렇게 예쁘고 애틋하게 바라보고 떠날 것이라 생각하니 몇 달 후면 돌아갈 나의 동네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 웰스의 조용한 골목 골목 >


새로운 도시에 왔다면 그 도시의 펍을 아니 들어갈 수 없는 법.

처음 웰스에 들어설 때 눈도장을 찍어둔, 딱 봐도 역사가 깊을 것 같아 보였던 마을 초입의 펍에 들어가 맥주 한 잔과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비니거 칩스 한 봉지를 주문했다. 웰스의 신성한 물이 도시를 촉촉하게 적시듯 우리는 웰스의 맥주를 마시며 웰스라는 도시에 촉촉하게 젖어갔다.


< 영국 동네 탐방에서 '펍'이 빠지면 섭섭하다 >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잉글랜드 웰스(Wells)

신성한 물(Well)의 도시, 웰스(Wells) _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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