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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다 치즈’의 시작, 영국 체다(Cheddar) 마을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잉글랜드 체다(Cheddar)

by 노현지


전통적으로 치즈가 발달한 유럽에서 나라별, 지역별로 각자의 방식으로 제조되는 정말 수많은 종류의 치즈가 있겠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치즈를 고르라면 아마도 체다 치즈(Cheddar Cheese), 모짜렐라(Mozzarella Cheese), 파마산 치즈(Parmesan Cheese)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셋 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되고, 또 많이 소비되는 치즈는 단연 ‘체다 치즈(Cheddar Cheese)’.

일상에서 자주 먹는 햄버거, 샌드위치 등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영양과 풍미를 더하는 체다 치즈는 ‘슬라이스 치즈’로 개별 포장되어 집 앞 마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간편 영양 간식이다.

영국 잉글랜드 남부 지도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이 인기 치즈의 이름((Cheddar)과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임실치즈마을’이나 ‘상하농원’ 같은 체다 치즈 홍보용 테마 공간이 아닌가 의심이 들만큼 체다 치즈의 ‘체다’와 스펠링 하나 틀리지 않는, 진짜 ‘체다(Cheddar)’라는 이름의 마을.

< 잉글랜드 남부의 작은 마을 '체다' 위치 (출처 : 구글 지도) >


이 체다(Cheddar) 마을도 지난 편에서 본 웰스(Wells)처럼 바스(Bath)에서 한 나절에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여서 아이들을 등교시킨 평일 오전, 후다닥 외출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체다 마을로 향했다. 차 앞 유리로 보이는 하늘이 무척이나 예쁜 날이었다.


< 바스(Bath)에서 출발해 체다(Cheddar)로 가는 길 >


체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리니, 그 사이 간단히 사전공부를 해 보자.

일단 우리나라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체다 치즈는 영국에서 태어난 전통 영국산 치즈다. 그리고 영국 중에서도 콕 찍어,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체다’ 지역에서 12세기경부터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체다’ 에서 만든 치즈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딴 ‘체다 치즈’가 된 것이다. 체다 치즈는 특유의 진한 풍미와 단단한 식감으로 영국 왕실의 입맛을 사로잡아 ‘왕의 치즈’로도 불리며 영국을 대표하는 치즈로 자리매김했다.

19세기에 대량생산을 위한 산업화 체계를 마련하기 전까지 체다 치즈는 체다 마을에서 수공업으로 생산되었다. 이 체다 마을에서 특별한 치즈가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체다 치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무래도 ‘체더링(Cheddaring)’이라는 커드(Curd) 처리 공법.

‘커드(Curd)’란 응고제에 의해 우유가 액체(유청)와 고체로 분리될 때 고체에 해당하는 ‘응고된 단백질(카세인(Casein) 단백질)’로 치즈가 되기 전 단계의 덩어리 즉, 치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덩어리 안에는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머금은 지방과 수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커드를 일정기간 숙성하면 치즈가 되는데, ‘체더링’은 커드를 숙성시키기 전, 커드를 쌓고(Stacking), 뒤집고(Turn-over), 누르는(Pressing/Draining) 작업을 반복하는 체다 치즈만의 핵심 공정이다. 체더링을 통해 수분이 빠져나가고 산도가 조절된 커드는 숙성 과정을 거쳐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쫄깃한 질감과 진한 풍미를 가진 체다 치즈가 된다.


두 번째 체다 치즈만의 특별함은 ‘동굴 숙성(Cheddar Gorge)’이다. 체다에는 마을 초입부터 시작해 마을을 감싸듯 발달한 협곡이 있는데, 체다 마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이 협곡에 있는 동굴에서 치즈를 숙성시켰다고 한다.

< 체다 치즈 숙성에 최적인 체다 협곡 동굴 ( 출처 : 체다 골지 치즈 컴퍼니)>

고대부터 이 지역의 식품 저장소로 사용되어 왔다는 체다 협곡 동굴은 연중 온도가 약 10~12℃로 일정하고, 습도 또한 80% 이상으로 유지되어 치즈가 마르거나 부패하지 않고 고르게 숙성되는데 아주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더하여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동굴 내 자연적인 공기 흐름은 치즈 숙성에 딱 알맞은 수준의 곰팡이와 미생물 번식을 유도하고, 숙성 중 발생하는 가스를 외부로 배출하여 ‘향미 밸런스’가 좋은, 쉽게 말해 ‘고소하면서도 은근하게 쿰쿰한 향’을 띤 체다 치즈만의 향과 맛을 만들어 냈다.

앞서 체다 치즈의 첫번째 특징으로 설명한 ‘체더링’ 공정도 사실 이 협곡 내 동굴에서 치즈를 숙성하기에 최적화된 커드를 만들기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산물이었다. 커드에 수분이 많으면 쉽게 상하거나, 또는 소비기한이 짧기 때문에 자연 동굴에서 장기간 숙성 및 보관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체다 치즈는 점점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갔고, 그 결과로 진한 풍미와 단단한 질감이라는 체다 치즈만의 특징을 띄게 된 것이다.

이리보면 체다 치즈 특유의 깊은 향과 맛은 험준한 협곡에 터전을 잡은 체다 마을 사람들이 자연을 알아가고, 자연에 적응했던 긴 시간 동안 쌓이고 숙성된 삶, 그 자체의 향기와 맛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체다 마을의 정체성인 체다 치즈를 완성시켜준 '협곡과 동굴'을 알리는 표지판 >





체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아주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높고 깎아지른 절벽 같은 암벽산이 좁은 2차선 도로 양쪽에 공고한 성벽처럼 드리웠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다니... 어딘가 미지의 곳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 체다 마을 초입에서 만나는 가파른 협곡 >

곧 머리에 뿔이 난 (아마도) 산양들이 도로 가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 것이 보였다. 구비 진 도로 때문에 한 번, 숨 막히는 협곡 풍경 때문에 또 한 번, 그리고 자동차 따위 신경 쓰지 여유롭게 제 자리를 지키는 동물들 때문에 또 한 번 차의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체다 마을로 들어섰다.


< 도로 가에서 여유만만하게 풀을 뜯는 산양들 >


절벽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협곡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나타난 체다 마을. 병풍 같은 거친 협곡과 그 아래, 좁은 도로를 따라 늘어선 빈티지하고 예쁜 상점, 카페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협곡 마을’ 체다를 한 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 '짜잔~' 협곡 너머로 나타난 체다 마을 >


동화책 삽화로 등장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들도, 돌담에 붙어 있는 빨간 우체통도, 두 세 집 건너 한번씩 등장하는 치즈 가게들도 모두 정겨웠다. 이렇게도 높고 억센 암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에 기대어, 자연과 함께 피워낸 삶의 터전들이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 체다 마을 초입 풍경 >


협곡의 암벽을 더듬어 마을로 더 깊이 들어가면 길이 조금 더 넓어지고, 체다 협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흐르는 ‘체다 개울(Cheddar Yeo)’이 보였다. 개울과 그 주변으로 돋은 초록의 풀밭 덕분에 높고 거칠던 체다의 인상이 부드럽게 변했다. 개울 건너에 자리잡은 가게들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협곡의 벽을 더듬어 걸어가면... >
< 한결 부드러운 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온다 >


체다를 보기 위해 아침도 먹지 않고 바스에서 달려온 남편과 나는 우선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개울 건너의 가게들 중 체다 치즈를 닮은 노란색 티 룸(Tea Room)으로 들어갔다.


< 이 날 우리가 선택한 '진짜 체다(Genuine Cheddar)' >


‘Genuine Cheddar’라는 이름에서 ‘내가 ‘진짜 체다’의 맛을 보여주지!’ 같은 당당함이 풍겼다. 가게의 내부 인테리어에서는 정말 ‘한 집에서 오래오래 살아온 할머니의 집(물론 영국인 할머니일 것이다!)’에 온 것 같은 정통성(?)과 다정함, 그리고 푸근함이 느껴졌다.


< 고풍스럽고 정겨운 분위기의 'Genuine Cheddar' 내부 >


나는 크림과 버터를 곁들인 스콘과 홍차가 나오는 크림티(Cream Tea)를, 남편은 처음보는 이름의 ‘플라우맨(Ploughmans)’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판에 적힌 구성물로 봐서는 체다 치즈, 햄, 빵, 양파피클, 샐러드, 처트니 소스, 과일 등이 같이 나오는, 보통의 브런치 메뉴 같은 음식이 아닐까 예상했다.


< 메뉴판에 적힌 낯선 이름 '플라우맨' >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Ploughman’이 무슨 뜻인지 검색했다. 그 뜻은 ‘쟁기질하는 농부(ploughman)’. 응??

‘플라우맨스(Ploughmans)’는 전통적인 영국 시골 농부의 점심에서 유래한 영국식 메뉴로 치즈와 빵 중심의 간단하고 푸짐한 찬 음식으로 이루어진 식사(Cold Lunch)로, 보통 시골 펍이나 티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라고 했다. 영국에서 지낸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던 시기였는데도 그때까지 바스나 혹은 다른 여행지에서 본 적이 없는 메뉴라 ‘왜 한 번도 못봤지?’ 하는 의아함과 호기심이 일었다(물론 있었는데 못 보고 지났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흔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할 듯하다).

메뉴판에서 설명한 그대로의 ‘플라우맨(Ploughmans)’이 나왔다. 접시를 푸짐하게 채운 채소와 과일은 신선했고, 진한 체다 치즈가 특히 맛있었다.


< 영국 시골 농부의 점심에서 유래한 ‘플라우맨(Ploughmans)’ >


나중에 영국인 지인에게 ‘플라우맨(Ploughmans)’에 대해 물었더니, 영국에서 흔한 메뉴라며 그때까지 내가 이 메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다. 둘이 대화를 하며 찾아낸 답은, 우선 내가 사는 바스는 오래 전부터 사교의 도시라 농촌과 거리가 멀었고(플라우맨은 본디 ‘농부’의 점심이었다), 지방으로 여행을 간다고 해도 시골이 아닌 주요 도시 위주로 다녔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점에서 이날 ‘체다’로의 여행은 이미 치즈로 세계적인 ‘네임드(Named)’가 된 유명 여행지를 구경함과 동시에, 작은 시골 마을의 소박한 정서가 베어 있는 ‘영국의 새로운 음식문화’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 내가 주문한 크림티도 함께, 소박하고 정겨운 '체다'에서의 브런치 >



‘진짜 체다의 맛(Genuine Cheddar)’으로 허기를 달랬으니, 다음은 ‘진짜 체다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러 가 볼까?

앞서도 언급했듯 현재 체다 치즈는 19세기에 산업화된 이후 대부분 기계화된 현대식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치즈가 된 체다 치즈의 수요를 어찌 맞추겠는가. 사람의 수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게 효율적인 기계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체다 마을에서도 점차 더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즈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전통을 사랑하는 영국에서 귀한 ‘전통 체다 치즈 제조 방식’이 그대로 사라지도록 두고 볼 리가 없다. 2003년, John과 Katherine Spencer 부부는 체다 마을에 체다 치즈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체다 골지 치즈 컴퍼니(Cheddar Gorge Cheese Company)’를 설립하고, 현대적 위생 시설을 갖춘 소규모 전통 치즈 공장을 지었다. 과거부터 체다 마을에 뿌리를 두고 역사를 이어 온 기업은 아니지만, 현재 체다에서 유일하게 전통 제조 방식을 고수하는 체다 치즈 제조사로써의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수작업 중심의 전통 방식으로 체다 치즈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체다 주요거리의 중심에 자리한 치즈 공장>
< 체다 마을에서 전통 체다 치즈 제조 방식을 이어가는 '체다 골지 치즈 컴퍼니' >


체다 골지 치즈 컴퍼니는 단순히 치즈를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관광 상품으로써 치즈 공장 투어 프로그램과 치즈 시식 및 판매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체다 치즈’가 궁금한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우리 또한 영국 바스 주변 지도에서 체다 치즈와 같은 ‘체다’ 이름을 보고 이 마을을 방문했기에 손수 공장 투어 티켓을 구입하여 체다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 '체다 골지 치즈 컴퍼니' 수작업 공장 입구 사진 >
< 윈도우의 소품들이 빈티지하다. >


공장 내부에는 체다 치즈를 만드는 공정이 단계별로 정리되어 있고, 각 공정별로 이어진 작업실의 한쪽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작업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도 안을 볼 수 있도록 비치된 여러 개의 귀여운 발받침대에도 ‘치즈’가 담겨 있다. 다만,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치즈 제조 공정이기에 각 단계가 매번 쉼없이 진행될 수는 없어 많은 부분을 작업자가 직접 만드는 모습 대신 글자와 사진으로 대신해야 했다. 하하하...;;;


< 작업실 내부를 볼 수 있는 유리 창문 >
< 어린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에도 치즈향이 났다 >
< 자세한 공정 설명 (오른쪽부터 읽어주세요.) >
< 포장 단계에서 작업하는 직원을 발견! >


그래도 괜찮았던 것이, 우리의 목적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치즈 제조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전통적 소규모 체다 치즈 공장의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공장 안 이동하는 동선 사이사이에 놓인 오래된 수작업 도구들로 이미 투박하지만 정성스러웠던 전통의 느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 전통의 수작업 시절에 사용되었던 도구들 >


체다 치즈만의 깊고 진한 향미를 완성하는 ‘숙성실(Maturing)’이 보였다. 전통 제조 방식을 따르자면 체다 협곡 내 동굴에 들어가 있어야 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협곡 내 동굴에서 치즈 숙성을 하고 있지만 실제 동굴은 품질 관리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하다. 그래서 이렇게 공장 안에 동굴의 컨디션과 흡사한 숙성실을 마련하여 치즈가 어떻게 숙성되는지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주로 숙성을 시작한지 1개월에서 1년 반 정도 되는 초기~중기 숙성 치즈들이 잠을 자는 곳이라고 했다.


< 체다 치즈만의 향을 완성하는 '숙성실' >


체다 치즈는 숙성 정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것으로 유명한데, 6개월 미만의 아기 체다 치즈(Mild)는 맛과 질감이 부드럽고 촉촉한 편이고, 12개월 정도(Mature)되면 진한 맛과 쫀쫀한 식감으로 체다 치즈 특유의 풍미를 갖게 된다. 18개월 이상 숙성된 것들은 ‘Vintage’ 단계로 분류되는데 훨씬 진하게 숙성된 맛이며 씹을 때 결정(Crystals)도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동굴 숙성 치즈는 최소 12개월 이상을 숙성하는데, 천연 동굴 속에서 자연과 시간이 함께 부린 마법으로 짭짤한 감칠맛과 톡 쏘는 산미, 그러면서도 고소함을 잃지 않는 복합적이고 깊은 풍미를 발산하는 동굴 숙성 치즈는 ‘Cave Matured Cheddar’라는 라벨을 붙여 더욱 특별한 고급 제품으로 판매된다.


< 체다 협곡 동굴에서 숙성된 'Cave Matured' 체다 치즈 (출처 : 체다 골지 치즈 컴퍼니) >


공장 투어의 끝은 지금까지 설명한 ‘진짜’ 체다 치즈를 시식할 수 있고, 구입도 할 수 있는 매장으로 이어졌다. 빈티지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의 매장에는 시식을 볼 수 있게 조각 낸 치즈가 종류별로 그릇에 담겨 방문객들을 반겼다.


< 체다 치즈를 시식하고 구매도 할 수 있는 매장 >


우리도 직원의 도움을 받아 숙성 단계별 체다 치즈를 맛보았다. ‘체다’라는 같은 이름을 붙이고도 숙성 정도에 따라 정말 다른 맛과 향을 띄는 체다 치즈가 매력적이었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나는 18개월 이상 숙성된 ‘Vintage’ 체다 치즈를 좋아했고, 무엇이든 적당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12개월 전후의 ‘Mature’ 체다 치즈를 좋아했다.

시식 코너 뒤편에 마련된 치즈 진열대로 가서 좋아하는 단계의 치즈를 담았다. 특별한 ‘Cave Matured Cheddar’도 잊지 않고 구매했다. 체다 치즈와 같이 곁들여 먹으면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스낵과 소스 느낌의 피클도 빠지면 섭섭. 한아름 구입한 것들을 담아갈 빈티지한 느낌의 기념용 ‘Cheddar Gorge Cheese Company’ 가방까지 야무지게 사서 손이 무겁게 체다 치즈 공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 풍미 가득한 체다 치즈를 와인과 함께 먹을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단 침이 돌았다.


< 본격 체다 치즈 쇼핑 타임!! >


입간판을 대신하듯 뒷마당에 놓인 우유 수레와 탱크가 ‘유일한 전통 방식 체다 치즈 공장’이라는 이곳의 이미지를 더욱 정겹고 다감하게 조성하며 마지막 나서는 걸음을 배웅해주었다.


< 뒷마당에 놓인 우유 수레와 탱크로 빈티지 레벨이 가득찼다 >



체다 마을에서의 가장 중요한 일을 마친 후에는 마을 안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 보았다.

체다 치즈 공장을 지나 개울 가에 근사하게 자리잡은 레스토랑도 지나자 작은 개울 너머에는, 평일이라 많이 북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소란함이 느껴지던 이전의 거리와 달리 여행자의 발길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거리와 마을이 있었다. ‘체다 치즈를 처음 만든 영광스러운 과거의 체다가 아닌, 현재의 진짜 체다 사람들의 공간인가 보다.

왠지 조용한 그들의 일상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경계가 느껴져 발길을 돌려 다시 여행자들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 현재의 체다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 >


체다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2층 펍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파란 하늘과 그보다 조금 더 파란 파라솔이 태양을 가려주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니 고즈넉한 영국의 시골 마을 체다가 휴양지처럼 시원하고 활기차게 느껴졌다.


< 체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2층 펍 >


우리는 진짜 체다 치즈를 경험하기 위해 체다 마을에 왔지만, 사실 체다는 액티브한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마을이기도 했다. 영국 내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체다 협곡은 하이킹이나 암벽 등반을 하기에 좋고, 협곡 내 동굴 탐험(Gough’s Cave와 Cox’s Cave)도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 간 낮시간에 짬을 내어 찾은 우리에겐 협곡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직접 방문해 경험을 할 시간까지는 부족했다. 음... 꼭 시간적 문제가 없었더라도 동적인 활동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내가 과연 협곡 탐험을 했을 지는 의문이다. 하하. 모처럼의 데이트 중인 우리에겐 선선하고 맑은 오후의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맥주잔 뒤로 보이는 한가로운 체다의 풍경이 더 잘 어울렸다.


<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의 풍경 >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체다 거리를 되걸어 나갔다. ‘체다 시골 농부의 점심’을 알려준 티룸 근처에 나무를 직접 조각하여 치즈 플레이트를 만드는 수공예 가게가 보였다. ‘Cheddar’라는 글씨를 새긴 여러 사이즈의 나무 플레이트가 가게 앞 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 작고 귀여운 나무 쥐가 나무 플레이트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자신도 훌륭한 기념품이 될 것이라고 유혹했다(실제로 나무 쥐가 스스로 도는 건 아니고, 손으로 돌리면 돌아간다.^^;;)

‘그래 같이 가자, 체다 치즈는 체다산 치즈 플레이트에 담아야지!’


< 체다 치즈를 위한 체다산 치즈 플레이트 >


진짜 체다를 떠다는 길. 다시 높은 협곡들이 나타나 체다 마을을 뒤로 숨겼다. 조금 전까지도 걸어 다닌 체다 마을이 사실은 현실에 없는, 신비로운 결계 속 가상의 마을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하는 풍경이었다.


< 다시 만난 체다 협곡과 산양 >


오전에 마중 나왔던 산양들이 도로 가에서 여전히 풀을 뜯고 있었다. 체다 협곡과 함께 그들도 체다 마을의 초입에서 신비로운 전통 체다의 비법을 지키는 수호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내가 산 치즈들은 결계를 통과하는 중에도 사라지지 않고 바스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 체다를 떠나는 길 >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잉글랜드 체다(Cheddar)

‘체다 치즈’의 시작, 영국 ‘체다(Cheddar) 마을’ _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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