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Cambridge)
영국에서 지내면서 ‘런던 빼고 영국 여행’을 다닌 도시들 중 마지막 여정은 런던보다 조금 북쪽에 위치한 잉글랜드 동부의 케임브리지(Cambridge)였다.
때는 9월의 끝자락, 산과 나무, 들판이 가을로 물드는 시기였고, 우리의 긴 영국살이도 계절처럼 끝자락에 이르렀다는 점 때문에 조금은 감상적이고, 또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던 케임브리지는 강물과 함께 흐른 여행이었다.
케임브리지(Cambridge)는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이 있는 세계적인 대학‧학문의 도시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생기기 전 케임브리지는 농촌과 지방의 소규모 시장 정도가 있었던 전형적인 중세의 조용한 작은 마을이었다. 1209년에 옥스포드(Oxford)에서 옥스포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과 지역 주민들 간의 불화로 인해 일부 학자와 학생 들이 옥스포드를 떠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때 옥스포드를 떠난 이들이 케임브리지로 옮겨와서 케임브리지 대학을 설립했다. 이후 작은 마을 케임브리지는 대학 관련하여 인구가 늘고, 상업이 다양화되는 등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점차 발전하여 현재는 옥스포드와 함께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캠 강(Cam River)’을 잇는 다리를 중심으로 최초의 마을이 생겨난 것에서 유래해 ‘캠(Cam)’ 강과 ‘다리(Bridge)’를 합친 지명(Cam+bridge)을 갖게 된 케임브리지는 현재도 캠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라는 이름 하에 31개의 칼리지(구성 대학)로 구성되어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 건물들 역시 캠 강을 중심으로 도시 전반에 퍼져 있다.
그 중 가장 중심이 되고 유명한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주변을 직접 걸어 보았다.
케임브리지의 거리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또 이전에 다녀온 옥스포드 대학 거리에 비해 소담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도로 폭, 높지 않은 건물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케임브리지는 대학들이 도시, 또 강을 포함한 자연과 어우러지게 분포하고 있고, 학교와 외부를 구분하는 높은 담이나 거대한 문이 없어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옥스포드는 대학들이 서로 밀집되어 있고, 건물도 중세 시대 건축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무겁고 엄숙한 느낌을 준다. 옥스포드가 전통적이고 위엄 있는 노(老)학자의 느낌이라면 케임브리지는 자유롭고 포용적인 젊은 지식인의 느낌이랄까?
‘옥스브릿지(Oxbridge)’로 묶어서 언급되기도 하는 영국의 유서 깊은 두 대학 도시가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해 무척 흥미로웠다. 어떤 이들은 품위 있는 옥스포드를 사랑할 테고 어떤 이들은 케임브리지의 자유를 사랑할 것이기에 두 도시 중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내게 묻는다면 나는, 비록 옥스포드에 ‘해리포터 대연회장’의 모티프가 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ge)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의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같은 풍경을 보았지만 해리포터 키즈인 딸아이는 무조건 옥스포드라고 외쳤다. 하하.)
넓지 않은 케임브리지 도로에는 차보다 자전거가 더 제격이라 케임브리지에는 자전거 인구가 많다. 우리가 거리를 구경하는 중에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 한 켠의 자전거 주차장에도 자전거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는 어딘가 낭만적이다.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전거가 도시를 더욱 자유롭고 운치 있게 만들었다.
뉴턴의 사과나무
케임브리지에서 트리니티 칼리지에 갔다면 꼭 봐야 할 나무가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나무가 아닐까 싶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사과나무다.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를 보고 중력의 영감을 얻었다는 아이작 뉴턴은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 트리니티 칼리지에서는 뉴턴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트리니티 칼리지의 작은 정원 안쪽, 당시 뉴턴이 실제로 머물렀던 건물(Nevile’s Court) 근처의 잔디밭에 뉴턴의 사과나무를 심어 두었다.
그런데 트리니티 칼리지 정원 안에 있다던 사과나무가 트리니트 컬리지 앞 도로 가에 떡하니 서 있어서 처음엔 이 나무가 아닌 줄 알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사과나무를 찾아 나서려는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닌가. 이럴 땐 매우 높은 확률도 다수가 맞는 법이다. 그렇다면 트리니티 칼리지 정원 안에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다는 정보가 틀렸던 것일까?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었다. 트리니티 칼리지 앞 거리의 나무는 뉴턴의 사과나무가 맞았다. 뉴턴의 사과나무가 서 있는 잔디밭도 트리티니 컬리지의 정원이 맞았다. 다만 공간을 구분하는 물리적 높은 담이 없을 뿐.
도로 아래 얕은 연석이 경계가 되어 트리니티 칼리지 정원과 일반 도로를 구분하고 있었다. 앞서 내가 말한 케임브리지의 개방적 구조가 바로 이런 점을 말한다. 덕분에 트리니티 컬리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사과나무 너머로 뉴턴이 실제로 거주했다는 방의 창문도 볼 수 있었다. ‘상아탑’과 ‘일상의 거리’ 사이에 높은 담장이 있었다면 이 도로는 얼마나 답답해 보이고, 뉴턴의 사과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줄을 섰을까. 또 한번 케임브리지의 자유로움에 반하고 말았다.
그런데, 거리를 걷기만 해도 볼 수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정원 안 뉴턴의 사과나무는 실제로 뉴턴이 보았던 ‘그 사과나무’는 아니었다. 진짜 뉴턴의 사과나무는 그의 고향인 링컨셔 주 울즈소프 매너(Woolsthorpe Manor)에 있고,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나무는 그 나무의 가지에서 접목하여 심은 ‘후손 나무’였다. 그리고 이런 뉴턴의 사과나무의 후손은 트리니티 칼리지 말고도 뉴턴의 업적을 기리는 다른 대학들(영국 요크대, 링컨대, 독일 일메나우 공과대학 등등)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뉴턴이 고향의 사과나무에서 얻은 영감을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이론으로 정립한 곳이 여기 케임브리지의 트리티니 칼리지라고 하니, 뉴턴이 머물던 방 앞에 심겨진 이 사과나무를 다른 곳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Bookshop Site'
트리니티 칼리지 근처에는 또 하나의 역사가 깊은 곳이 있다. 아니, 현재에도 계속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
케임브리지 대학의 공식 출판사인 ‘Cambridge University Press’는 1534년에 영국 왕실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아 출판 활동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연속적으로 운영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이다. 그리고 트리니티 칼리지 근처 케임브리지 중심 거리에 있는 서점 ‘Cambridge University Press Bookshop’은 이 유서 깊은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서점이다.
여기가 의미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서점이 있는 이 자리가 1581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민간 인쇄업자에 의해 서적 인쇄 및 판매를 시작한 이래, 영업장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책 판매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Bookshop Site’라는 점이다.
말이 좀 복잡한데, 쉽게 말해서 16세기부터 지금까지 내내 ‘Cambridge University Press Bookshop’이 있는 자리에서 쉼 없이 책이 판매되어 왔다는 뜻. 과거에는 책을 꼭 서점에서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곳에서 책은 팔았으나 ‘서점’은 아니었다는 실체적 사실 관계 때문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부연설명이 붙지만, 어쨌거나 영국의 서적 출판과 관련된 긴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이어가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임은 분명했다.
16세기부터 줄곧 민간업자들에 의해 케임브리지 대학의 출판물이 판매되던 이 장소를 1992년에 ‘Cambridge University Press’는 직접 매입했고, 현재는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한 서적만을 판매하는 서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 Bookshop’은 대형서점이라 할 순 없지만 2층으로 구성된 꽤 큰 규모의 서점이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면서도 우아하고 엔틱한 느낌의 서점은 톤 다운된 민트색 벽이 서점 내부를 감싸고, 밝은 나무색 책장과 같은 색의 아치형 창문, 천장의 나무 서까래와 나무 바닥 등이 내추럴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더 넓은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나선형태로 고요하고 정적인 서점에 리듬감을 더했다.
작은 글씨의 영어 책들이 빽빽한 책장 중간중간에 우리도 아는 유명한 영국 작가들,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등의 책이 보여 반가웠다. 그들의 초상화나 작품을 활용한 기념품, 또 케임브리지를 그린 엽서 등은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제인 오스틴 에코백을 사지 않고 돌아온 것은 아직까지도 한으로 남아 있다. 우리동네 바스(Bath)의 제인 오스틴 뮤지엄에 가면 같은 것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없었다. 갖고 싶은 기념품은 그때그때 사야 한다.)
기념품 대신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을 하나씩 사서 서점을 나오는데 서점 밖에서 작은 서점을 또 발견했다. 마법의 책방 같은 느낌의 미니어처 서점에는 이 자리를 지켜온 역사적 연도(1534, 1581, 1992)가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서점 유리창 아래 바닥에 붙어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마치 오랜 시간 이어온 책의 공간을 수호하는 것 같기도 했다.
평화롭고 소란한 캠 강 산책
캠 강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케임브리지를 둘러보았다. 강의 양쪽을 연결하는 수많은 다리 아래로 작은 조각배들이 수시로 지나갔다. 작은 조각배를 타고 유유자적 강물의 흐름을 즐기는 사람들의 한가로움이 좋았다.
케임브리지 학생이 아니라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기꺼이 문을 열어둔 트리니티 칼리지 가든(Garden) 안으로도 캠 강은 이어졌다.
고요한 정원을 거닐며 눈에 담는 캠 강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였고, 가을로 물드는 계절이었고, ‘쉼’이었다. 어려운 책과 씨름을 하다가도 학교건물 밖으로 나와 주변 풍경을 한번 바라보면 온갖 수심과 상념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정말로 자연 속에 어우러진 케임브리지였다.
벤치에 앉아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우리 앞으로 몇 대의 조각배가 지나갔다. 캠 강을 따라 걸을 때부터 수없이 본 이 작은 배의 정확한 이름은 ‘펀트(Punt)’이다. 그리고 캐임브리지의 캠 강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유유자적 뱃놀이(?)는 ‘펀팅(Punting)’이라고 불린다.
펀팅(Punting)은 바닥이 평평한 펀트(punt)를 강물 위에 띄우고 긴 장대로 물 바닥을 밀며 나아가는 전통적인 수상 레저 활동으로, 주로 케임브리지 및 옥스포드 등지의 잉글랜드 남부 수심이 낮은 강에서 즐겼다. 지금도 케임브리지 캠 강의 대표 즐길거리인 펀팅은 관광객과 학생 모두 즐기는 대표적인 체험이라고 한다.
펀팅을 즐기는 방법은 전문 가이드가 배 운전을 해 주는 ‘가이드 펀팅’과 직접 장대로 배를 운전하는 ‘셀프 펀팅’이 있는데, 트리니티 칼리지 가든의 캠 강에서 우리 앞을 지나는 배들 중 하나의 배가 직접 장대를 잡은 호기로운 모험가였나보다.
배 끝(운전석)에 선 청년이 (보기에는) 능숙하게 바닥을 푹 찍었다. 장대의 힘을 받은 배는 물살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고, 긴 막대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청년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강바닥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서 빠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막대를 놓친 청년이 망연자실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강바닥에 꽂힌 막대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강 밖의 벤치에 앉은 우리도 알 수 있었다.
“어머 어머, 저 배 어떡해? 막대를 놓쳤어! 대~박!”
우리 가족의 시선이 강물 위의 그 배로 집중했다. 우리뿐 아니라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배로 집중했을 것이다.
뒤따라오던 배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앞 배의 청년이 놓친 막대를 뽑았다. 장대도 노도 젓지 않아 속도가 느려진 앞 배를 뒷배가 따라잡았다. 청년은 무사히 막대를 손에 다시 쥐었다. 막대를 건네는 배에도, 막대를 돌려받는 배에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잔잔한 강물에 웃음의 파문이 일었다.
바닥이 평평하고, 바닥을 짚을 수 있는 긴 장대가 있다고 해도 좁고 긴 배의 균형을 잡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아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는 경우 실제로 이런 ‘펀트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가 본 것처럼 잘 해결이 되는지 강물 위의 펀트 사고는 현지인과 여행객들 사이에서 재미난 웃음 소재가 되어준다고.
웃음으로 끝나긴 했지만, 또 앞 뒤의 두 배가 일행이었는지 어떤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란히 가고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나. 아무도 없는 강에서 이렇게 막대를 놓쳤는데 뒤따르는 배 하나 없고, 느리더라도 계속 흐르는 것이 강물인지라 배만 자꾸자꾸 앞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상상하니 내 일이 아닌 데도 아찔했다. 정말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막대를 잡기 위해 물에 뛰어 들어야 하는 걸까?
막대를 놓친 청년은 다행히 물에 뛰어들지는 않아도 되었으니 그나마 행운이었다. 한 무리의 배가 떠난 후 잔잔해진 캠 강에 다시 배 한 척이 등장했다. 까만 개가 함께 타고 있는 배였다. 가만히 앉아 펀팅을 즐기던 개가 무엇에 흥분을 했는지, 순간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어머어머어머, 개가 물에 뛰어 들었... 어-어-어-어?? 헉!!!!”
개가 물에 빠졌다는 나의 외침이 다 끝나기도 전, 곧바로 개를 구하기 위해 사람이 강물로 뛰어 들었다. 개의 몸부림에 강물이 첨벙첨벙, 개를 붙잡으려는 사람 때문에 또 한번 첨벙첨벙. 이것이야 말로 ‘대박적’인 펀트 사고의 목격이었다. (정말 다행히 캠 강의 물은 성인 남성이 설 수 있는 정도의 수심이었고, 개와 주인은 무사히 배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든 캠 강의 수심이 얕은 것은 아니니, 가급적 뛰어들기 금지!!)
아름다운 자연 속 평화로운 풍경과 깜짝 놀랄 이벤트, 그리고 큰 웃음이 함께한 캠 강 산책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케임브리지 즐기기
케임브리지에 오면 다들 펀팅을 한다하니 우리도 캠 강 위의 펀팅을 아니 즐길 수 없다!
캠 강 위에 동동 뜬 작은 펀트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선착장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펀팅을 체험하기 위해 선착장에 모여 있었다.
펀팅의 경험이 없는 우리는, 비록 강물로 뛰어들 강아지는 없지만 장대를 놓칠 위험은 유효하므로 ‘셀프 펀팅’ 말고, 안전하게 ‘가이드 펀팅’을 타기로 했다. 숙련된 운전사가 배를 운전해주는 가이드 펀팅은 대략 1시간 좀 덜 되는 시간 동안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캠 강을 따라 배를 타고 흐르면서 케임브리지 풍경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특히 ‘Backs’라고 불리는 캠 강의 서쪽 지역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는데 펀팅을 하며 그 주요 건물과 다리 들을 스쳐가는 것은 케임브리지 여행의 백미로 꼽히기도 한다.
펀트에 탑승! 정말로 바닥이 납작하고 평평한 펀트는 강 밖에서 보던 것보다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었다.
가장 먼저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를 만났다. 화려하고 층층으로 쌓은 모양 때문에 ‘The Wedding Cake’라는 별칭이 있다는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뉴코트(New Court)’ 건물 외벽에는 가을의 붉은 물이 든 담쟁이덩굴이 가득했다.
같은 세인트 존스 칼리지이지만 캠 강을 사이에 두고 뉴코트의 건너편에 있는 건물(Third Court)을 연결하는 폐쇄형 다리는, 펀팅을 하는 누구나 꼭 사진을 찍는다는 유명한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다.
사형장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널 때 죄수들이 탄식을 내뱉었다는 원조 ‘탄식의 다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지만 그 다리와 폐쇄적인 외형이 비슷하여 캠 캉 위의 이 다리도 ‘탄식의 다리’라 이름 붙었다.
실제로 세인트 존스 칼리지 학생들이 ‘시험이 끝나면 이 다리 위를 지나며 탄식을 한다’는 농담이 있기도 하다고. (이와 똑같은 배경으로 ‘탄식의 다리’라 불리는 다리가 옥스포드 대학에도 있다!)
배는 잔잔하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캠 강의 또 다른 운치는 강 가 곳곳에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 나무. 가을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캠 강의 풍경을 더욱 보드랍고 은은하게 만들어 주었다.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를 지날 때는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라는 '킹스 칼리지 채플(Chapel, 학교 부속 예배당)'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영국 고딕 건축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채플 건물이 웅장하면서도 강직한 기품이 느껴졌다.
캠 강은 계속 흘러 탄식의 다리와 함께 캠 강의 상징 같은 다리인 ‘수학의 다리(Mathematical Bridge)’에 이르렀다.
퀸스 칼리지(Queens’ College)에 있는 수학의 다리는 전체적으로 아치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다리에 쓰여진 모든 목재 하나하나가 모두 직선이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철저한 수학적 계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일. 하여, 수학적인 지혜로 만든 다리라는 뜻에서 사람들이 ‘수학의 다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실제 이 다리의 이름은 ‘Wooden Bridge’라고 하는데, ‘수학의 다리’가 훨씬 멋스럽게 들린다.
수학의 다리를 기점으로 배를 돌렸다. 수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안정감 있는 회전이었다. 하하.
다시 킹스 칼리지를 향해 캠 강 위를 흐르는 배의 시선이 닿는 곳곳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배는 계속 나아가 클레어 칼리지(Clare College)에 있는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클레어 브리지’를 지나, 그와 대조되는 분위기의 현대적 콘크리트 다리 ‘가렛 호스텔 브리지(Garret Hostel Bridge)’를 지났다.
특히 가렛 호스텔 브리지의 오른쪽 편 건물은 도서관인데 그 옆 담장에 다리를 강 쪽으로 내리고 앉아 있는 학생들이 자유로워 보였다. 청춘은 강물도 두렵지 않지. (혹은 학업 스트레스가 강물보다 두렵거나...^^;;;)
배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근처 ‘트리니티 칼리지 브리지(Trinity College Bridge)’로 접어 들었다. 앞서 산책을 하며 강 밖에서 바라보던 다리 아래를 직접 지난다고 생각하니 마치 우리가 풍경의 한 조각이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속한 풍경에서는 장대를 놓치는 이도, 강물로 뛰어드는 강아지도 없는 평화로운 트리니티 칼리지 강변이었다.
처음 펀팅을 시작하며 보았던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탄식의 다리’가 다시 보였다. 흐르는 캠 강 위의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는 뜻.
한가로운 뱃놀이가 끝나는 아쉬움을 배 위로 드리운 버드나무잎을 만져보면 달랬다. 안전한 운전과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의 펀팅을 완성시켜준 가이드에게도 ‘So Many Thanks’를 전했다.
강물 따라 흘렀다 돌아오니 환하던 하늘 빛이 그새 조금 어둑해졌다. 괜스레 ‘시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중심 상가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나오자 완전히 어둠이 내린 케임브리지 거리. 전등빛이 밝히는 밤의 케임브리지도 편안하고, 근사했다.
그리고 위의 사진이 케임브리지에서 내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자, 런던과 바스를 제외한 영국의 지방 도시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다. 여행자 같기도 하고, 생활인 같기도 했던 영국에서의 시간이 끝이 났다.
또한 이번 케임브리지 여행기를 끝으로 [런던 빼고 영국 여행]도 끝이 났다. 영국의 지방을 다닌 여행기이다 보니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나혼자만 즐겁고 읽는 이들은 (가급적 자세히 배경이나 위치 등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익숙하지 않아 공감이 잘 안되는 부분도 상당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긴 시간 함께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런던을 제외한 영국의 지방 곳곳을 여행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잠시 쉬었다가 아직 못다 전한 유럽의 도시 여행기를 이어서 마무리할 예정이니 조금 기다려주길, 더하여 케임브리지의 가을 같은 낭만적이고 그윽한 가을날 보내시길!
흐르는 강물처럼, 영국 케임브리지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 _ 마침
매거진 [런던 빼고 영국 여행] _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