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자선언
스웨덴의 경제학자 요한노르베리의 <자본주의자선언>은 모든 사람이 다 한 번씩은 읽어야 할
시대를 뛰어넘는 명저입니다. 일론머스크가 괜히 추천한 게 아닙니다.
기근과 빈곤을 없앤 힘은 자유를 바탕으로 한 공정한 경쟁,
누구나 국가의 소유보증을 받는 토지시스템이라는 사실을 통계상으로 증명하는 부분에서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진보주의자였던 제가 돌아선 이유는 하나입니다.
정치인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증오감과 남을 끌어내리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생각이 삶을 갉아먹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데이터로 증명을 해도 이념에 사로잡힌 채 애써 자기부정하며
정신승리하는 삶에 지치신 분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택정책을 마주하며 자신의 삶과 가정의 안위를 걱정하기 보다
"이러다가 정권 또 넘어가"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돌이켜보셔야 합니다.
가정과 나의 삶보다 정말 정치와 이념이 더 중요합니까?
정치도 결국 가족과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 역할을 넘어서는 순간 괴물이 됩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를 진짜 믿고 나니 이런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지만 신앙서적보다 실제 데이터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통계를 더 선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실제로 나라와 민족, 개인을 구원하는
실제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에수를 믿으면 진짜로 먹을 게 나옵니다.
예수를 믿으면 진짜로 나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가 실제로 배고픔을 해결해 준다는 통계적 사실이 바로 경제입니다.
어느 인종, 어느 국가, 어느 종교와 상관없이 똑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음을 요한보르베리는 증명합니다.
자유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기쁨을 개개인이 누리기 시작할 때 나라와 민족은 발전했고, 가난한 자를 돌봤고, 아픈 자들을 섬겼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품었습니다.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자유를 바탕으로 한 성장했을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치가 되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전으로 수만 명을 서로 죽이던 르완다는 이제 아프리카 IT의 허브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자유 가운데 공정한 경쟁과 토지등록시스템개혁을 통해
사람들이 뛰놀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먹이고, 살리는지 르완다가 증명합니다.
권력은 나에게 권력을 이양한 국민들의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타락합니다.
그 이전엔 대한민국이 살아있는 증거였고 지금도 수많은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이
포퓰리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선전선동해서 서로 싸우게 만들던 좌파정부를 몰아내고 자유진영 편에 서서 재건을 꿈꾸고 있습니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나라들도 하나둘씩 합류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억압도 받지 않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얻어내야 합니다. 왜 좌파정부가 지배하는 나라는 모두 똑같이 몰락의 길을 걷는 이유에 대해서
왜 고민하지 않습니까? 왜 좌파정부가 지배하는 나라는 관료들 정치인들만 배부르고 국민들은 둘로 나뉘어 싸우는 것입니끼? 왜 좌파정부는 독재를 꿈꾸고 지지자들은 더 궁핍해지고 소리만 질러댈까요?
간단합니다. 정치권력의 노예가 되어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사무치게 소중한 생명의 가치입니다. 으쌰으쌰하는 것보다, 가정을 지키는 것이 훨씬 소중합니다.
나의 아이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리가운데 자유를 지켜야 합니다.
점점 살 곳을 잃고 밀려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자유를 잃게 방종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고, 자본가 탓이라고, 전정권 탓이라고 남탓을 하면 할수록 깊은 노예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정치인들은 바로 그 지점을 노려 선전선동메시지로 여러분의 인생을 뺏어갑니다.
선동가들의 메시지에서 빠져나와 사무치게 소중한 자유를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