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기도가 길어지면서 나도 덩달아 기도에 열을 올리는 중인데 하나를 깨달을 때마다 가뿐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고통에 이르는 기이한 경험 중이다. 사람의 민낯, 본성, 본심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가면이 두꺼운 사람일수록 지은 죄가 두껍고 업이 두꺼워 얼마나 닦고 살아야 할지, 지옥이 하나의 솥이라면 뚜껑을 열어 그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이것도 제자의 공부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이 이러니 제자는 하늘과 땅,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에서 사람들을 잘 이끌어 내라고, 좋은 말, 나쁜 말, 가릴 것 없이 사람 각자에게 딱 맞는 말을 해주라고. 근데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속도 끓이고 애도 탄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요즘은 미미와 밤마다 걷는데 밤공기도 좋고 기도도 더 잘 된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라는 경이 있는데 기도 중에 21번 독송한다. 다라니는 마를 쫓고 켜켜이 쌓아 올린 지난 업들을 하나씩 벗겨내는 힘이 있는데 줄줄 욀 때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았나 낱낱이 보인다. 다시는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 다시는 상처 주면 안 되겠다 다짐을 덧붙인다. 나도 제자 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이 다짐을 영영 지킬 수 있다고 확신은 못 하겠지만, 될 수 있는 한, 힘 닿는 한 해보겠다고 한다. 지은 죄를 다시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지은 죄를 다시 마주 볼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과거를 답습하느냐, 잘못을 구하고 용서 비느냐는 당신의 몫이다.
아이스크림이 살찌기 좋은 음식이라는 건 모르지 않지만 요즘 아이스크림 먹는 게 취미가 됐다. 백미당의 우유 아이스크림, 수영구 어딘가서 팔던 젤라또, 슈퍼에서 산 토마토마, 요 며칠 내 입에 들어갔던 것들이다. 미친 사람처럼 기도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친구들 겨우 만나서, 그것도 무당이거나 반무당 인 것끼리 두루 모여 아이스크림 먹는다. 우리가 제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돈 없을 때 막노동할 용기는 없으면서 체면 구기는 건 싫어하는 것들, 사람 안 맞아서 일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면서 돈 욕심은 있는 것들, 이런 모순을 견뎌야 하는 게 삶이라고 씹으면서 하루를 마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모순을 못 견디는 것 같다. 이 말을 3년 전에 미미가 했었다. 자기는 모순을 못 견디겠다고. 나는 미미를 따라가고 있다. 이제 그 말을 내가 한다. 그래, 나는 모순을 못 견딘다. 세상의 정의가 어떻고 약자가 어떻고 물 위에 뜬 주둥이처럼 말은 잘도 하지만 그게 다 자기 세상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 것들, 반대편에 서 보지도 않고 강자 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헐뜯는 것들, 정의로운 사람, 법을 잘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고는 싶지만 당장 삐딱한 말 한마디 숨기지 못하는 종자들, 그래도 사랑할 것이다. 남들은 삐딱한 본심 숨기느라 앞에서 진땀빼겠지만 나는 미운 건 밉다고 말하고, 앞으로 사랑해보겠다고도 말할 참이다. 이런 그대도 사랑했으니 고치지 않는다면 그 종자들은 스스로 나쁜 사람인 걸, 사랑받고도 달라지지 않는 무뢰한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앞으로 어떤 판을 짤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사람도 그냥 보내기는 싫다. 누구 하나 깨끗지 않은 사람 없이 다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게 불가능할 거라는 것도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 공들였던 이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 참 포기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