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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만 되면 생각나는

by 이윤우

글 쓰는 사람들은 거의가 수다쟁인데 스스로 말 많은 사람인 걸 모를 때가 많다. 말보다 글이 편해 조용해 보이는 것뿐이지 이들은 온갖 상상을 가슴 속에서 일으키고, 혼자 키득거리며, 한시바삐 이 재미난 상상을 말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내가 그렇다. 나는 오늘도 미미를 생각하다 운전하면서 왕왕 웃었다. 미미는 제멋대로 단어를 기억하는 편인데, 이를테면 몬테소리 어린이집을 몬스테라 어린이집이라고 한다든가, 영포티를 포영티라고 한다든가, 제멋대로 말하지만 누구도 이상한 점을 못 느껴 당시는 조금도 대화에 지장이 없다. 누군가 그게 아니라고 교정이라도 하면, 미미는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그럼 지금부터 몬스테라 어린이집이나, 포영티로 쓰자고 한다. 자기가 그러면 그런 거라고. 그 뻔뻔하고 귀여운 표정만 생각하면 언제고 빵빵 터진다.


내 웃음소리가 워낙 커 자동차 밖에서도 다 들리고, 옆 차선에 정차해 있던 사람은 혼자 핸들을 퍽퍽 내리치며 웃어 재끼는 여잔지 남잔지 모를 것을 분명 봤을 것이다. 이 상상조차 웃겨 죽을 것 같다. 제발 누가 나와 내 친구들의 일상을 찍어 유튜브 박제라도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금세 부자가 될 자신 있다.


아까 저녁 먹을 무렵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나이 먹은 게 살살 티도 나고, 내 힘으로 딱히 못 할 게 없는 지점에도 온 것 같은데 인생 이거 맞냐는 생각. 뭔가 더 특별한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 이건 민규 마음일 것이다. 민규가 조만간 사업 번창한다고 굿을 부탁했는데, 우리 앞으로 굿이 잡히면 의뢰한 사람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걸 무속에서 표적이라고 한다. 굿을 의뢰한 사람의 생각,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 결백하고 힘 있는 굿을 하게끔 돕는다. 몸 아픈 사람 굿이면 우리도 몸 아프고, 마음 아픈 사람 굿이면 우리도 마음 아프다. 민규는 그냥 부자 말고 백만장자, 억만장자, 그런 거 하고 싶은 앤데, 나는 민규 표적 받을 때마다 돈에 환장한 그 애 마음이 느껴져 탄식을 금치 못한다. 온종일 장사 잘될 생각만 하고 어떻게 사는지, 이게 사람 사는 건지 싶다. 돈에 눈이 시뻘게져서 내 돈 어딨 냐고 찾아다닐 것만 같은 고약한 심보 덕에 민규는 부자가 될 테지만 외로움은 못 참기 때문에 우리가 꼭 같이 있어 줘야 한다.


글에 쓸 말이라곤 맨날 노는 친구들이 다지만 그게 다라서 다행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진짜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 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어디 한 군데라도 이상하지 않은 데가 없어서 보통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전부 이방인처럼 살았겠지만 그 이상한 것들이 모여 있으니 정상이 됐다. 우리는 다 어디가 고장 났던 사람들, 직업도 별난 사람들, 각자의 수호신을 데리고 사는 사람들, 오늘 안부가 너네 집 동자는, 혹은 할머니는, 장군님은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인데, 내 누울 자리가 이곳이라 너무 좋다.

사람은 가면 안 쓰는 곳, 내가 진짜 누군지 아는 곳에 다다라야 이게 인생이라 느끼는 것 같다. 돈 많고 명예 있고 다 좋지만 결국 내 마음 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돈, 명예보다 먼저 배웠다. 내 마음 편한 후에 돈도 명예도 누리겠다,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이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 수 없다.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 웬만한 돈과 명예가 채워지면 행복할 것 같지, 아니다. 호언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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