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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걸 떠나 보내는 일

by 이윤우

글을 쓰고 싶지만 어떤 글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아빠의 장례를 마친지 일주일이 다 되었고, 아빠 앞으로 된 문제를 해결하느라 며칠 정신없이 지냈다. 앞으로 몇 달은 걸릴 것이다. 관공서를 오가며 서류 더미에서 지내고 있다. 서류상 아빠 이름 옆에는 사망, 망자, 고인, 세상에 없는 사람임을 알리는 말들이 따라붙는다.

나는 어린 나이도 아니지만 많지도 않은 나이에 부모를 다 잃었다. 나는 어렸을 적 부모를 여의고 제자 길에 오를 팔자란 걸 모르지 않고, 부모의 죽음이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고, 아주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늘 생각해왔다. 올해는 아빠 운이 더럽게 좋지 않았다. 내 곁에 두면 아빠를 살릴 수 있다고, 이 액운을 모쪼록 피해 갈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옆집을 계약했다. 아빠는 이사를 한 달 남긴 시점에 돌아가셨다.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다 본가를 정리하러 간 틈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는 말처럼 나는 아빠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살아생전 아빠에게 충성을 다한 효자이자, 아빠의 손과 발로 몇 년을 살았지만 아빠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아플 줄 몰랐다.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말처럼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디서든 떳떳하고 당당한 내 모습은 변함없지만 앉아도, 서도, 누워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 마음을 표현할 말이 없다.

수억 광년의 역사를 가진 이 행성에 인간은 고작 100년도 안 되는 시간을 살다 간다고, 너도 나도 다 먼지일 뿐이라는 말을 쥐고 며칠을 지냈다. 선물같은 말이었다. 그 말은 뇌까리면 할수록 사람과 싸울 필요도 없고, 누가 잘 났고 못 낫니 서열을 나눌 필요도 없고, 본인 맘 편하게 잘 지내면 그게 최고의 인생이라는 감각을 선명하게 남긴다. 이로써 나는 더 큰 제자가 된 셈이다. 나는 부도 잃었고 모도 잃어서 둘 중 하나라도 잃은 이가 손님으로 온다면 위로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 나도 네 입장이 되어봤다고, 네 마음을 잘 안다는 그 말을 어디서든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잃을 것은 오직 아빠뿐이었는데, 이제야 나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은 어디서든 발목 잡히지 않는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이 세상 무엇도 막아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아빠는 평생 그걸 바랐다. 내 자식이 어디서든 밉보이지 않고, 어디서든 발목 잡히지 않고, 어디서든 일류가 되기를, 그 누구에게도 지고 돌아오지 않기를 말이다. 내게 유일한 잃을 것이었던 아빠가 죽고, 나는 일류 될 일만 남은 사람이라는 게, 아빠 죽음으로 아빠 소망이 완성된 게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 아빠 몫까지 잘 살아서 일류 되면 된다. 끝내주게 잘 살다가, 60년 정도 있다가 저승에서 아빠 만나면 그만이다.

내 팔자 박복한 걸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내 팔자는 내 몫이다. 고통의 바다를 넘으면 희망의 봉우리가 있을 것이다. 아빠가, 남은 친구들이, 피가 섞이지 않는 친절한 가족들이 나를 거기로 데려다 줄 것이다. 영영 자빠지지 않을 거란 보장 없지만 지금처럼 이겨내면 그만이다. 잘 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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