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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에

by 이윤우

내 인생 남들보다 쉽게 갈 리 없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아빠의 죽음은 무슨 수로도 비껴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좀처럼 마음 잡기가 쉽지 않다. 팔자가 지독해서 신도 원망하고, 하늘도 원망하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내가 신을 모심으로써 아빠가 본래 살 시간보다 훨씬 더 살았다는 사실을 위안처럼 쥐고 있다.


내 첫 책 [ 미미에게 ] 가 세상에 나왔을 때 좋아하던 아빠, 내가 점을 잘 봐 좋아하던 아빠, 내가 제법 유명해져서 좋아하던 아빠, 그렇고 그렇던 아빠들이 피부에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우리 아빠는 사업이 망했을 때도 생활비 한 번 빠져 먹은 적 없는 사람인데다 가장 비싼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던 사람이었다. 아빠 생각을 하다가 내 할 일 못하게 될까 봐 가슴에 묻고 살 작정을 거듭거듭 해봐도 잘 안된다. 그러나 할 것이다. 나는 아빠만큼 강한 사람을 본 적도 없지만, 그런 아빠를 이기고 살아온 게 나라는 사실도 잘 안다.

고아 된 삶을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하나, 그런 생각에 홀로 차 안에서 왕왕 울었다. 얼마 안 가 미미가 왔는데 하는 말이 그렇게나 위안이 됐다. 김순자를 보라고. 김순자는 태어나자마자 아들 아니라고 당신 엄마가 이불에 둘둘 말아 광에 처박아 놨다고. 죽으라고, 죽으라고 몇 날 며칠을 광에 뒀는데도 안 죽었다고. 또 김순자 스물 몇 해 생일에 당신 아버지가 연탄가스에 취해 돌아가셨다고. 김순자는 그날 이후로 생일만 되면 아버지 제사상 먼저 차리는 인생이라고. 남편은 IMF 사업 실패로 수 억 빚지고 돌아왔는데, 김순자는 목욕탕 청소, 식당 설거지 해오며 그 빚을 다 갚았고, 십 년 빌어 낳은 딸 하나 보고 사는데 그 딸은 자라서 무당 됐다고. 그런 김순자도 사는 데 너는 왜 못 사냐고.. 그런 김순자가 네 엄마 해주겠다는데 너는 잘 살아야 된다고, 세상에서 가장 힘센 뒷배를 둔 거나 다름없다고.. 그 말에 얼마를 더 울었는지 모르겠다. 김순자가 엄마라면 앞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꽤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서.


내일 아빠 진오귀 굿을 잡아뒀다. 진오귀 굿은 망자를 저승 좋은 곳에 인도하는 굿이다. 세상에 다른 집 망자들 좋은 곳 보내드리는 일만 해봤지, 우리 아빠를 망자랍시고 굿판에 부른다니 결국 이날이 왔다. 아빠 아빠, 나는 아빠 훗날 죽으면 매년 제사 아빠 좋아하는 음식 그득그득 올려서 차려주고, 아빠 저승 좋은 곳 가서 편히 지내라고 굿도 해주고, 아빠 죽어서도 딸 덕분에 호강한다는 소리 듣게 할 거야. 지나가는 말로 그런 적 있는데 그날이 와버렸다. 아빠가 몇 달 전에 나한테 그랬다. 아빠는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가보지 않은 나라 없고, 해보지 않은 것 없다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는 다 해본 인생이라고 그런 얘기 했었는데 망자 된 아빠 보면 한은 요만큼도 없어서 내 마음이 편하다. 먼저 간 엄마 손 잡고 잘 지내고 있어.. 나 내일 굿판 가면 이렇게만 말하면 될 것 같다.


딱 오늘까지만 힘들어해야지. 진오귀 하고 나면 끝내주게 내 인생 잘 살아야지. 나는 부모 살아생전 안 해본 효도 없어서 뭐 더 해줬어야 했다, 그런 미련 요만큼도 없다. 아빠도 잘 알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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