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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 힘차게 ! 지금껏 그랬듯이 !

by 이윤우

아빠를 저승으로 천도하며 본 것은 아빠만큼 한도 없고 원도 없이 이승을 떠나는 사람은 본 적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믿었는지, 생생한 음성으로 듣고 내 눈으로 보며 배웅도 했다. 이럴 때 내 직업에 얼마나 감사한가. 죽은 아빠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제자 삶이 그렇듯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은 모두 앗아 가셨지만, 망자 된 아버지와도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은 남겨 두셨다.

세상 큰일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 뒤에는 사람들의 진가를 볼 수 있다. 꼭 큰일을 치르면 사람이 가려지고, 이놈이 얼마나 냉정한 놈이었는지, 저분은 몰라뵀던 귀인이었는지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이 이어진다. 이 또한 하늘이 큰일 치르느라 고생한 내게 주신 선물인데, 감사한 사람은 누구이며, 몰랐던 악인의 맨얼굴은 어떤지 낱낱이 알려주신다. 나는 이렇게나 큰 걸 받고 산다. 큰 걸 받는 사람은 큰일을 해야 한단 사실 모르지 않아서 앞으로 살아갈 적 얼마나 더 큰 마음을 먹어야 할지 사뭇 두렵기도 하지만, 그깟 두려움 한 몇 초 꾹 참으면 또 달아나는 거 모르지 않는다. 나는 말만 번지르르하고 지키지도 않는 놈, 사람 좋은 척은 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놈, 결국 두려움에 지는 놈들과는 다르다. 그놈들이 나 인생 잘못 살았어요, 감각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말로, 행동으로 지금껏 보여주고 살았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귀인들이 누군지 다시 봤는데, 시골에 차려진 빈소를 아주 먼 곳에서도 달려와 준 사람들이며, 부고 소식을 알리자마자 보내주셨던 부의금이며, 혹자는 내가 밥 굶고자빠져 있을까 봐 서울서 밥을 지어 부산 내 집 앞에 갖다 놓기까지 했는데 그들 덕분에 장례를 치른 지 한 달도 안 된 이 시점에도 볼일 보러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실은 엄청난 몸살과 장염에 지금껏 아프지만, 누누이 말하건대 이 정도 신체적 고통은 나의 정신을 죽일 수 없어서 괜찮다. 무엇도 나의 정신을 죽일 수도, 훼손할 수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어 가족과 친구, 이웃이 있고,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곧 나의 앞길을 막는 일이다. 주변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밥은 먹었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별일 없는지 애달파하고, 대신 울어도 주고, 가끔 열심히 번 돈도 척척 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 도리다. 상대가 갚을 것인지, 갚지 않을 것인지 재기 전에 고통을 모른 척 말아야 훗날 당신도 도움을 받는다. 당신은 줄곧 당신에게 인복이 있는지, 귀인이 있는지, 인연이 있는지 내게 묻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매양 한 가지다. 그 운들은 당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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