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덕분에 참을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기도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원래 하던 대로 하루씩 쌓아가고 있다. 급하게 준비한 일본 여행도 기대가 된다. 이맘때 일본은 풀풀 끓어오르는 열가마와 다를 바 없고, 조금이라도 덜 덥게 지내려고 돈 쓸 각오를 했다. 우리 또 무지막지 바빠질지 몰라 잔뜩 즐기고 오겠다는 마음이었다. 미미와 나, 단둘의 여행은 처음이다. 늘 다른 친구들이 함께였다. 지하철 화장실 위치까지 암기하고 떠나는 나와 달리, 내 친구들은 가방에 옷 몇 개 챙겨서 당장 떠나는 편이었고, 늘 쪽수에 밀려 그들의 엉성한 여행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은 양보할 수 없다. 땀 흘리지 않는, 흔히 본 적 없는 음식을 먹는, 말마따나 촌스럽지 않은 여행 계획이 착착 돌아갈 것이다.
큰일을 겪었지만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존경을 느꼈다던 친구가 있었다. 어제도 제법 오래 전화했는데 보통 내가 친구의 말을 다 들어주는 편이지만 요즘은 친구가 내 말을 다 들어준다. 나는 친구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네가 별로면 별로인 것까지 다 말한다. 그건 네 잘못이라고, 네가 잘못된 거라고…. 사실 친구는 사회생활을 무척 잘해서 어디서든 이상한 짓이라곤 안 하지만, 아주 가끔 심사가 뒤틀려 일부러 상대방 가슴에 못 박힐 말만 골라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확히 그 지점이 나랑 닮아서 친구가 됐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남들에게 화내지 말아야 할 이유, 참아야 할 이유 등을 배웠던 것 같다.
내가 보살의 길로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그 친구도 내 뒤에서, 옆에서, 어디서든 따라오고 있었을 것이다. 이 친구와 친구로 남을 수 있던 것도 미미가 잘 알려줘서, 라고 생각한다. 미미에게 배웠던 것들을 친구에게 다 알려줬다. 친구는 또 다른 곳에서 내게 들었던 것들을 알려주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은 금세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여기 있다. 어떤 인연을 맺고 사느냐가 앞날을 크게 좌우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나 괜찮아서 잘 나아갈 수도, 세상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요즘 미미와 같은 집에 잔다. 미미 집에서 며칠, 우리 집에서 며칠, 서로의 집에 번갈아 잠을 잔다. 밤 11시를 맞춰 함께 기도하고, 새벽 5시를 맞춰 함께 기도하며 보살의 삶을 함께한다. 이렇게 쭉 지내다 보면 더 괜찮아질 것이다. 우리 인생 앞으로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마(魔)를 더욱 수월하게 이겨내고, 어떤 마는 모른 척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것은 마인 줄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우리가 강한 게 아니면 누가 강한 거냐는 생각을 꽉 쥐고 나아가고 있다. 내 인생은 갸륵한 게 아니라 너무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험이 가끔 연속될 뿐이라는 데 와있다.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