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의 흐린 눈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by 이윤우

나 어렸을 적 너무 아플 때 그랬다. 고통은 감각의 일종이므로 몸이 느끼는 것에 그칠 거라고, 이 감각은 내 정신을 결코 거스를 수 없을 거라고. 아마 내 곁의 신들이 알려준 거겠지만 그때는 신이 알려준 거라고도 생각 않고 계속 쥐고 있었다. 신을 받고도 변함없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고통은 감각의 일종이라 다스리면 될 거라는 기이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병원도 잘 안 가고, 약도 잘 안 먹어 금방 나을 감기도 오래 앓는 실수를 한다. 요즘은 주변 친구들이 이럴 때 병원 가는 거라고, 감각이고 지랄이고 병원 가라고 말해주기 시작해서 큰일 치르지는 않는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듯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아주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르게 보는 것을 넘어 완전히 다른 형태로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고통 따위 감각 일종이라 이겨내면 그만이라 믿고, 혹자는 같은 고통에 콱 죽어버릴 수도 있고, 누구는 고통이라 생각조차 못 할 수 있는 것 같다. 각자 상황을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가운데 가장 현명한 방식이라면 상황 자체를 제대로 관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상황이 ‘ 정확히 ’ 무어라고, 고로 ‘ 정확히 ’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중요한 건 웬만한 사람들은 모든 상황을 ‘ 정확히 ’ 볼 줄 모르는데, 그래서 의사도 필요하고 과학자도 필요하고 무당도 필요하고 공무원도 필요한 법이다. 웬만한 사람들이 모든 상황을 ‘ 정확히 ’ 관통할 줄 모르는 건, 각자 무지하고 몰라서가 아니라 저마다 살아온 환경과 습득한 바가 달라서, 아는 게 달라서 그럴 뿐이다. 나 역시 몸 되게 되게 아픈 사람이 손님으로 와 ‘ 나 귀신 붙은 거 아니냐. ’ 물으면, 뒤에 따라붙은 게 있나 없나 쓱 보곤, 없으면 곧장 병원 가시라 그렇게 말씀드리곤 한다. 이렇듯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무수한 일들은 어디서 고치면 된다는 정답은 없고 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러니 우리는 세상 자체를 더욱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단 하나의 정답만 있다면 모두 그 길로 향하면 될 텐데, 그게 없어서 인간은 지금껏 서로 투쟁하고 싸워왔잖은가. 각자가 정답이라 외치는 전투 가운데 승자는 늘 힘이 좀 더 센 놈일 뿐이었다. 그 힘도 영원하지는 않았고.


세상에 정답이 어딨겠는가. 당신이 옳으면 당신은 왜 돈도, 명예도, 운도, 이미지도 당신 마음대로 안 되겠는가. 세상이 불공평해서, 강자가 돈을 다 가져가서, 강자 위주의 시스템이라서?. 아니, 그냥 같은 세상에 있어도 저마다 사는 궤가 다를 뿐이다. 처음부터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당신이 강자라 믿는 사람은 실은 강자가 아닐 수도, 강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일 수도, 진정한 약자일 수도 있다. 당신은 그저 당신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할 이유를 찾아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 집이 정답이라 믿으며 시기 대상이 없어져야 마음 편할 거라고 굳게 믿는다. 사람 인생은 이런 식으로 영문도 모른 채 비탈길을 내려간다.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믿는 사람들 열에 일곱이 이런 인생을 산다.


인생은 단지 과거의 나보다 조금 더, 조금 더 좋아지면 될 뿐이다. 처음부터 정답은 없고 우리가 정답이라 얼핏 믿는 것들은 그저 내게 없는 걸 가진 사람들, 내가 갖고픈 걸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 회전하는 인생, 그것 참 촌스럽고 재미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스로를 닦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