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무마하고 싶을 때, 스스로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서 도무지 인정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겠지만, 그렇다고 왕왕 추락하고 싶지는 않을 때, 과거에 그랬으나,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급하게 회항하는, 급하게 선을 따르는 척하는 지점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사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이 몹시도 많다.
이들은 이 지점에서 과거처럼 살면 안 되겠다느니, 더 이상 그렇게는 안 살겠다느니 말은 하는데, 사실 그것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인정하는 ‘척’하는, 혹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철썩 같이 ‘눈을 가리는’ 지점일 뿐이지, 진짜 뉘우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담 사람들은 제대로 뉘우치는 사람과 그런 척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은데, 이들은 다음과 같은 패턴을 지닌다.
이들은 본인에게 따끔한 말을 한 사람, 즉 본인을 뉘우치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만든 사람 앞에서만 성실하다. 즉,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내가 어떤 식으로 소비될지 개의치 않고, 오롯이 새 마음 새 뜻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뉘우치게끔 만든 사람 앞에서만 새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할 줄 안다는 것이다. 지금껏 본인의 잘못은 요만큼도 모르고 늘 억울해하며, 약자인 연기를 해왔던 것처럼, 그러한 습성을 뉘우친 척하는데 써보는 것이다.
더불어 급작스레 세상에 달관한 것처럼 말을 하고, 급작스레 과거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잘못을 많이 했다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약자 행세로 하여금 남들이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죄를 뉘우치는 사람을 연기하며 남들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수법인 것이다. 남들이 눈치를 봐야만 듣기 싫은 소리를 안 하니까, 도망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치 과거에 지은 죄는 자신과는 무관한 듯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그건 깨우치고 닦은 게 아니라 깨우친 척으로 하여금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닦는 게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았으면 당신이 마구잡이로 살 때, 결백하고 깨끗하게 산 사람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
진짜 닦는 사람은 내색하지 않는다. 삶의 고통과 파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경과 고난이 결국 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고 어디서도 티낼 수 없다. 티내는 것 자체가 몹시 부끄러운 일인 줄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어땠다고 먼저 선포하고 간략하게 말함으로써, 나는 솔직하다고 믿는 것들, 그 순간 잘못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 위를 줄타기하는 것들, 그렇게 죄가 사라진 것 같다고 지나치는 것들, 어디서 듣고 배운 조악한 옛말들을 가슴에 새기면 죄가 사라진다고 믿는 것들, 선을 따라하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지은 죄는 온데 간데 없다고 믿는 것들, 그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취한다. 어디까지 자신을 마주해야 조금이라도 덜 아플지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반드시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계속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그래야 훗날 더 높은 곳에서, 더 아프게 추락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