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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이렇게 흥에 겨운 일

by 이윤우

쓰고 가혹한 한 해가 다 갔다. 나 씩이나 되니까 이런 걸 견딜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버텼다. 그 말은 내가 나인 것에 감사하게 한다. 나니까 이 시간을 버틸 수 있다고,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지건 말건, 이것을 버틸 수 있는 것도 나라고, 내가 나라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이건 밋밋하고 시시한 나르시시즘 같은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우러러보는 말인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당신 역시 당신이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할 여지를 지닌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온다면, 당신도 당신 씩이나 되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그날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말들이 내 품 안에 하나둘 쌓이고 있다.


미미와 함께 가는 여행은 늘 좋지만 이번에 특히 좋았던 건, ( 실은 출장 가운데 여행을 이틀 끼워 넣은 것이지만 ) 우리 둘이라면 세상 어느 곳에 떨어져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진 데 있는 것 같다. 세상 사람들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느낀 지점이 많았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남던 방식을 적용하니 안 먹히는 데가 없었고, 어딜 가나 자기 이미지 챙기는 데 급급해 당장을 즐기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소비되고 보일 것인지에 집중하는 사람은 있다는 것, 얼핏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행복해 보이는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한 계산이 연속되는 것에 불과한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이런 거 한국이든 어디든 다 똑같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뒤집고 행복을 찾아 항해하는 자유로운 이들이 함께하고, 이렇게만 봐도 세상은 무어라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시간이었다.


여행 중에 느낀 것이지만 해가 바뀌면 많은 이가 나를 찾아오거나 떠나갈 것 같았다. 떠나는 이들은 무언가를 들켜서, 자존심이 상해서, 나로 하여금 좌지우지되는 것 같은 감각을 견디기 싫어서, 명징하게는 내가 당신의 자유를 아주 조금이라도 억제하는 것 같다고 착각해서일 것이고,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당신의 자유를 억제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니고픈 욕심을 취하기 위해 그 지점이 버려져야 할 것은 당신 역시 명징하게 아는데, 그것이 내 입을 통해 나온 게 자존심이 상하거나, 조금이라도 내가 틀려야 당신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걸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억눌러야 할 것이다. 나는 나를 떠나가겠다는 사람은 결단코 붙잡지 않는다. 당신이 잘 산다면 그것만큼 다행인 일이 어딨겠냐는 말이다.


주변이 조금씩 바뀌고, 내가 뒤를 봐줘야 할 사람들은 한층 달라진, 명징하게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로 하나둘 채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들이 믿고 따라준 만큼, 지금껏 그랬듯 최선을 다해 이들을 도우면 될 것이다. 그게 내 할 일이다. 스스로 관통 당했음을, 과거가 부끄러움을,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자의 모습은 얼마나 대담하고 용기 있는가. 그런 사람만이 대우받는 세상이 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많이 곤란할 것 같다. 나 이렇게 열심히 스스로를 닦고,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정진할 것인데 하늘이 나를 저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치에 어긋나는 게 아니겠냐는 말이다. 고로 나와 내 주변은 때로 흔들려도 영영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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