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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치료사의 근황

음악치료 자격증 하나로 베짱이처럼 잘 먹고사는 뉴욕에서 일하는 여자

by 음악치료사

오늘은 맥북을 새로 장만한 기념으로 제일 먼저 주소창을 열어 브런치에 들어왔다. 서랍장을 보며 2년 이상 묵혀둔 미숙한 글을 발행시킨 후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깨어있는 순간 대부분이 잡생각으로 가득한 나로는 적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고 약간 두서없이 들리겠지만, 입력되는 대로 적어보겠다.


요즘 나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집 직장 관계 등 모든 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이렇게 행복하고 안정적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꿈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일하는 건 쉽지 않고 장시간 출퇴근은 하루 중 가장 고통스럽지만, 그 외에 것들은 딱히 불평할 것이 없다는 게 얼마나 평화로운가? 하루하루가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런 연고 없이 뉴욕에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으며 마음고생도 많았고, 일적이라기 보단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맺는 것과 더 중요한 끊어내야 할 사람들과 끊어내야 할 때를 배워가며 성장의 고통을 즐겼다. 특히 내가 잘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참고 참아가며 묵묵히 내 할 일을 해나가며 코로나를 극복했던 것처럼 죽을힘을 다해 번아웃을 극복했다.


내가 그다지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지금 잘 지내게 된 건 아니고 좀 지난 유행어지만, 중꺾마 아니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꾸준함이다. 2022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남들이 가지 않는, 다들 뜯어말리던 험한 길만 골라간 적이 있다. 어디 믿는 구석이 있거나 다른 사람을 믿고 의지한 것이 아닌 나를 믿어서였다. 기적을 만들고 싶었는지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 나를 과대평가하며 내가 맞고 남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었다. 여태껏 살아오며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겪지 않았을 별의별 경험을 겪어왔기에 여기서 뭐 더 나빠지거나 더 배울 게 있나 망상에 젖어 자만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또 최악의 경험을 내가 자처해서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모든 선택에 후회는 없다. 어려서부터 날 독립적으로 키워주신 부모님 덕에 내 선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싼 똥도 내가 치우기 때문에 어떠한 큰일이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과 정신력이 뒷받침되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었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왜 그들은 나를 그렇게 대하고 생각했지? 물으며 나에게 잘못을 찾으려고 했지만, 세상에 다양하게 음흉한 사람들이 많다. 부족함이 없다 생각되고 거의 다 가진 잘난 사람들이라도 참 나와 결이 많이 다르고 안 맞는 걸 맞춰가는 것보단 때론 끊어내는 강단이 필요하다. 가장 믿고 인간적으로 참 좋아하고 사랑한다 할 정도로 친했던 사람이 남보다 못한, 아니 그냥 아무 관계없고 나와 더 이상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아무렇지 않던 나 자신이 좀 무섭기도 했다. 배신감과 싫어하는 감정도 존재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지나가는 행인 1로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친함과 의지함과는 달리 내적으로 건강한 거리를 두어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본다고 내가 귀가 얇다거나 휘둘린다고 얘기하곤 한다.

그냥 이미 나는 생각이 정리되었고, 다른 경우의 수 등 선택지를 넓혀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서 누군가 얘기해 주면 맞장구치며 시간 내어 답변해 준 것이 고마워 좋은 생각이다 맞장구 쳐주는 것뿐인데 그걸로 생색내거나 날 단정 지으려 하는 것이 좀 무례하다 생각하고 그냥 속은 아니어도 상대방 레벨에 맞춰주었다.


내가 잘하는 건 겉으론 어리숙하고 백치미처럼 보이게 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간혹 그런 가벼워 보이는 모습이 만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얼마나 생각이 넓고 깊은지는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아는 걸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판단하든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의 폭, 경험 및 재량에 따라 원하는 대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음악치료사로 십여 년 넘게 일하면서 근 2년 반 동안 능력 있는 상사와 좋은 동료들과 일하면서 치유가 되었고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내 본 성향을 억누르거나 숨기지 않고 빛날 때는 빛나고 다른 사람을 빛내주기도 하며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직장 직속 후배까지 생겨서 나의 노하우와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는 중이다. 내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고 해서 그걸 똑같이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보다 더 잘 나가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 거 같다. 내가 후배를 이렇게나 예뻐하고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음에 기쁘고 내리사랑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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