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껏 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나는 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조금은 느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맹랑하다" 혹은 "용감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솔직하다". 때로는 (지나치게)라는 괄호 안 묵음이 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말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솔직하고, 용감한 것. 설사 누군가에게는 당혹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아무나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뉴질랜드에서의 교환학생이 끝나고 뉴질랜드 남섬과 호주 여행을 마지막으로 남반구를 떠나기로 했다. 호주 여행 중 우연히 스카이다이빙을 하게 됐다. 버킷리스트에 있었다거나 해보고 싶어서 계획한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이번 기회가 인생에 단 한번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러가지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영어로 설명을 듣고 나자, 직원은 나에게 장비를 챙겨입고 instructor와 함께 뒷마당에 있는 경비행기에 오르라고 했다. 그때까지 내가 타봤던 여객기와는 사뭇 다른 외관의 작은 흰색 비행기. 헬리콥터와 비행기의 중간 정도 되는 듯한 그 운송 수단에 발을 디디고 올라섰다. 경비행기 조종사는 시종일관 룰루랄라 웃는 얼굴이었고, 매일 화장실 가듯 일상적인 일처럼 편안해 보였다. 비행기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랜딩해서 고도가 높아지는 것까지가 그렇게 순식간에 진행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려면 항상 대기 시간이 엄청 길었는데' 하며 헤드셋을 쓰고 소음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잠시, 거북이등껍질마냥 내 등쪽에 붙어있던 인스트럭터가 갑자기 문을 활짝 연다. 저 멀리 아래 땅이 최대한 줌아웃한 구글 맵처럼 아득하게 보인다. 인스트럭터가 말했다. 한 발을 문쪽으로 빼보라고. 나는 이게 맞나 하며 시키는 대로 순순히 발을 뺐다. 또 한발을 더 빼보란다. 테라스 끝에 앉은 것처럼 두 다리째를 열린 비행기 문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의 하늘 속 다이빙이 시작되었다. 자유 낙하였다.
쏜살같은 낙하가 끝이 나고, 특정 높이에서 낙하산이 크게 펼쳐졌다. 비명과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땅 가까이 내려왔는데, 그만 착지 단계에서 엉덩이가 깨질정도로 세게 땅에 박혔다. 중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중에 부모님께서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 참 겁 없다. 용기 있다. 라고 말을 하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정말 커다란 용기를 내고 나면 작은 일들에는 비교적 용기를 내기 더 쉬워진다는 것을 그 때 조금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만 21살의 내가 저질렀던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