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냄의 미학
미루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청소만큼은 몰아서 한 번에 하게 된다. 바쁘고 시간이 없단 핑계로, 다른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정리에 대한 욕구가 빵 터져버린 그 날이 바로 대청소 날이다. 그래서인지 내 책상은 늘 복작복작하다. 마음 속으로는 늘 '내가 맘만 먹으면 누구보다 깔끔하게 정돈해놓고 살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필요한 물건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우루루 내 일상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정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큰 시스템과 일상적 부지런함이 필요하지만 나는 두 가지 모두를 거의 포기하고 사는 사람인 것 같다. 밥을 먹고 돌아서면 또 다음 끼니를 생각해야 하듯이, 청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없어도 집안에 실시간으로 먼지가 쌓이는 걸 보면 지구가 흙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닫게 된다.
청소를 잘 하려면 비워내고 또 비워내서 더이상 치울 게 없는 상태를 만들면 된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청소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간해선 새 물건도 사들이지 않고, 최소한의 간추림으로 모든 삶을 구성해놓았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나는 물건을 잘 못 찾는 사람이기에 너무 많은 종류의 수납은 오히려 혼란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 또한 정리를 잘 못해서 생긴 결과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물건을 찾기가 더 쉽다. 집 안 어딘가에 물건을 너무 잘 넣어두면 다음 이사를 갈 때까지 못찾는 경우도 있다. 오로지 정리만을 위해 수납함이나 가구를 구입하는 것이 더 낭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자동화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최우선적으로'청소' 영역에 기술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인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이것이 딜레마 지점인데, 어쩌면 미혼남녀들은 끝내 집안일을 홀로 감당하기 싫어서 결혼을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더 깔끔한 사람과 덜 깔끔한 사람이 가정을 이룬다면, 보통은 더 깔끔한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더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신은 조금 덜 깔끔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 그들의 평균 생활 수준을 높여주기 위해서 더 깔끔한 사람, 지나치게 깔끔한 사람도 창조한 것이 아닐까.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