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6번째 키워드: 물건

소유와 내려놓음

by 언디 UnD

나는 물건을 구매하게 되면 새 것처럼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운동화나 옷, 그외 자잘한 물건들까지도 가격과 상관없이 그 물건이 가진 내구도를 오래 유지하려고 한다. 저렴하게 산 물건은 금방 버리고 새로 사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에게는 아직도 와닿지 않는 가치관이다. 이건 무의미한 사치나 낭비를 하지 않고 평생 꽤나 검소한 소비생활을 해온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동시에 애정 있는 특별한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향도 한 몫을 한다.


하지만 이런 나라고 해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없다는 것을 차츰 인정하게 된다. 물건은 쓰면 쓸수록 자연히 닳으면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조금 돈을 아끼려다가 다른 엄한 데서 돈이 스르르 새나가기도 한다. 결국 그러면서 반드시 내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언제나 깆고 있을 수 있는 물건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서 슬펐던 물건이 몇 개 있다. 정말 맘에 들었던 옷이나 신발. 늘어나고 더러워져서 어떻게 해도 처음의 그 상태로는 돌아갈 수가 없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내 20대 초중반의 기록을 담아놨던 외장하드. 이유를 알지 못한채로 외장하드가 갑자기 고장이 나버렸고, 여행의 소중한 추억이 담겼던 폴더는 더 이상 열어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클라우드에 사진을 저장하기도 하고, 외장하드를 여러개 구입해서 관리를 하고 있다.


다행히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게 될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나 자신, 물리적인 내 몸과 내면의 정신이다. 물건이라고 비교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제조품과 그 특징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성이 되어서 수많은 외부의 값을 치러 업그레이드되고, 또 노화를 겪고, 언젠간 그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 조금 징그러운 표현이지만 재활용은 아니더라도 머리카락 기부나 장기 이식 같은 방식으로 부분 재사용도 가능하다.

공수래 공수거.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말이다. 물건이 나에게 주는 효용과 만족이 있지만, 빈 손으로 왔고, 다시 손에 쥔 것을 내어놓고 떠날 일도 기억한다면 어떤 물건도 나의 내면을 뒤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keyword
이전 23화25번째 키워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