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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키워드: 부탁

부탁하는, 부탁받는 사람

by 언디 UnD

나는 다리가 잘 붓는 편이다. 주로 앉아서 생활을 하기도 하고 움직이거나 운동을 하더라도 다리로 피로가 빨리 쌓이는 편이다. 다리는 자기 자신이 주무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이 주물러 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어릴 때는 엄마에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부탁했는데 최근에는 그 상대가 남편이다.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 밥을 먹고 한숨돌리면 나름대로 쉬고 싶기도 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최대한 보내고 싶기 마련이다. 문제는 할 일은 많고, 서로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동일한 크기라는 것이다. 오늘 내가 가장 수고했고, 가장 에피소드가 많았고, 체력적으로 소진된 상태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이 가장 무겁듯이 저녁 시간에 피로도도 마찬가지다.


물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상대방에게 하기 싫은 것을 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디 사람의 욕구가 그렇게 간단하고 평화롭게 조화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간절히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남편의 동정심에 호소해 보기도 하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졸라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남편이 못이기는 척 내 청을 들어 주지만, 남편도 응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부탁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호의나 배려가 전제 돼야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조금 무력한 것 같아 보인다. 상대방이 안 들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부탁의 결과가 갖는 효과는 크다. 단순히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기쁨을 넘어서서 부탁을 받아 주는 부탁의 응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밤 10시쯤 “여보-!”라고 길게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남편은 이미 어떤 부탁인지를 잘 알고 있다. 못들은 척 대답을 미루는 남편에게 나는 더 길게 소리친다.

“여보----?”

웃음인지 울상인지 모를 표정으로 들어와서 퉁퉁 부은 내 다리를 만져주는 사람이 있다. 미워도 고와도 내 남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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