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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째 키워드: 음식

잘 먹고 잘 살자

by 언디 UnD

한국인은 밥심이라는데, 나는 한국의 DNA가 강력한지 밥을 참 잘먹는 아이였다. 희한스러울 정도로 고깃집에 가서 된장찌개랑 밥 세 그릇은 먹어도, 바삭거리는 과자나 서양 음식(?)인 피자, 햄버거 같은 건 여간해서 입에 안대는 아이였다. 과자와 탄산음료를 좋아하던 언니와는 다르게 깡마른 몸매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내 몸은 뉴질랜드 교환학생 시절 빵과 버터, 유제품, 그 외 정크푸드에 딥하게 노출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낙농업 1위의 나라답게 여기는 우유, 버터, 치즈 들어간 모든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식료품 가격도 비싸지 않았고, 별 생각없이 몇 달을 지내다보니 몸무게가 거의 7kg 가까이 불어 있었다. 마른 몸매에 그닥 민감한 문화도 아니다보니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혹독한 다이어트를 거치면서 생각했다. 입을 통해 내 몸안에 들어오는 것을 잘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영양학과 운동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직접적으로 기름에 튀긴 음식이나, 가공 식품, 고당식품, 영양소 밸런스가 안좋은 식사는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습관이 남았다. 입에 즐거운 음식이 진짜 좋은 음식이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이 유용하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이제는 소화력이 따라주지 못해서 입맛도 예전같지는 않지만, 섭취량 한도 내에서 최대한 깔끔하면서 몸에 좋은 것, 소화가 잘 되는 것을 찾아먹으려고 애쓴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하지만 몸에 안좋은 것 중 끊지 못하는 음식도 있다. 바로 라면. 보글보글 끓여 계란 하나 깨뜨려 넣고, 칼칼하게 잘 익은 김치랑 먹는 그 라면! 먼 옛날 호랑이가 깊은 밤중에 곶감을 탐냈던 것처럼 밤에 끓인 라면은 거부하기 더욱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합리화를 하곤 한다. 몸에 안좋은 다른 음식은 안먹으니까 이거 하나로 퉁치겠다고.


또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음식은 기억을 보관해주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오래 지나 지난 여행을 떠올려보면 장소 그 자체보다는 거기서 갔던 식당,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 바래지지 않고 강렬하게 남아있다. 맛있게 먹은 음식이든, 뜻밖의 음식이든, 혼자 먹었든, 다른 사람과 함께 먹었든,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 언젠가 다시 꺼내보게 된다. 크로아티아에서 먹었던 올리브 피자,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새우튀김과 문어 스테이크, 프라하에서 먹었던 굴뚝설탕빵, 파리에서 먹었던 바게트와 홍합 찜.. 좋은 여행의 조건에는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이 빠져서는 안된다. 좋았던 맛의 기억은 그 시간과 공간으로 다시금 나를 초대하고 그 때 느꼈던 행복감을 다시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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