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은 일탈일 뿐
일상을 모범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갑자기 평온함 가운데 이상한 욕구가 뾰족하게 튀어 오를 때가 있다. 이제 막 돋아나는 못된 여드름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떤 느낌. 알고 보면 평온함은 지루함의 또 다른 얼굴이었고, 나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욕구는 뭔가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의 지난 날들에는 소소한 작은 일탈부터 어쩌면 인생을 바꿀만한 큰 일탈도 있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일탈도,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일탈도 있었다.
꽤나 진한 계획형 인간인 나는 루틴을 벗어나서 자주 일탈을 저지르는 편은 아니었다. 학교 수업에 지각하지 않고, 약속된 일정을 소화하고, 교회 예배 시간을 지키고, 하루에 해야 하는 일과들을 제때 처리하는 게 더 우선순위다. 95% 이상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그 1년에 5% 정도 되는 날이 문제다. 그 때는 내가 설정해둔 대 원칙과 하위 규칙들은 모두 무력화된다. 뭔가 고장이 나버린 듯, 해야하는 일을 있는 힘껏 거부하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갑자기 주변 정리를 깨끗하게 하고 싶어서 물건을 정리해 몽땅 내다버리기도 하고, 원래 가려던 행선지가 아닌 전혀 다른 장소를 찾아 즉흥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자유로운 나를 지켜보는 흐뭇함과 함께, 또 이렇게 의미없는 일탈을 하는 스스로에 대한 현타가 올 때도 있다. 하지만 뭐건 간에 나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고 지루한 일상의 틀을 깨준다는 점에서 일탈이라는 단어가 좋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탈은 단연코 여행이다. 일본 라멘 먹으러 떠난 당일치기 후쿠오카 여행부터,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에 눈물 흘리며 무작정 비행기표부터 끊었던 갖가지 여행들, 그 당시에는 조금 무리스럽고, 대책도 없고, 밑도 끝도 없었던 일탈의 시간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여행의 조각들은 물리적으로는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았고, 마음 속 한 자락에 따스한 빛 같은 순간으로 남아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저질러 위험에 빠지거나 후회할 일탈이 아니라면, 일탈은 아무 일 없는 일상을 맛깔지게 살아가기 위한 의도적 변수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