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pect myself, Respect others
두괄식으로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딱히 없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을 존경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21c를 살아가는 아무개인 나는 존경한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얼마나 대단한지 공감도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고 업적을 인정하는 것, 혹은 누군가의 언행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나마 IT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세상에서 이루고 영향력을 미친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은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so what? 그는 그저 시대를 초월한 천재이자 괴짜이고, 반복할 수 없는 one and only 인생이기에 나에겐 그다지 효과적인 교훈을 주지 못하는 사례일 뿐이었다. 그럼 존경하는 사람이 없는 나는 이토록 오만한 사람인가? 적어도 '내가 제일 잘 나가' 류의 교만 캐릭터는 아닌데. 이럴 때는 존경에 대한 정의를 조금 더 파고들 필요가 있다.
영어로는 Respect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존경하다, 그리고 존중하다. 나는 이 단어가 꽤 맘에 든다. 리스펙도 스펙트럼 상에 있는 여러 상태를 반영하는 듯 해서다. 우선 기본 단계로서 '존중'이 있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 존중으로부터 시작해 어떤 경지를 넘어서면 상대방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닮아가고 싶을 정도의 '존경'이라는 궁극적인 감정 상태를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아마 그 두 상태 사이에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나 선망, 동경, 감탄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존경심은 표면적인, 물리적인 조건보다는 내면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내면의 의식, 그가 추구하는 가치,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 같은 것들이 기반이 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존경이 생길 것 같다. 누군가는 단시간에 엄청난 돈을 번 벼락부자 A씨를 존경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에서는 조금 벗어났거나 그 말의 깊이가 얕아 보이기 마련이다. 진짜 큰 가치를 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가치가 애써 티내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 그런 내면을 가진 사람을 나는 아직 그다지 못 만나본 것일 거다. 근데 당연히도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얼마 전 블랙핑크 로제가 한 시상식에서 감사한 사람들을 쭉 나열한 뒤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는데, 그 말이 가슴에 와 울림을 남겼다. 누군가 한 명을 정해서 '존경한다' 말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나 스스로를 나는 리스펙할 때에만 다른 이를 리스펙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존중하고, 다른 이를 존중하는 것에서 이 엄청난 존경이라는 감정을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