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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째 키워드: 재능

제너럴리스트의 비애

by 언디 UnD

다재다능하다는 말이 좋았다. 음악, 미술, 노래, 컴퓨터, 공부, 디자인 등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빠른 습득력을 가지고 있어서 더 많이 재능을 수집할 수 있었다. 다재다능을 추구하며 살다 보니 한 가지를 뚝심 있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있게 한 분야에서 1등을 한다거나, 한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을 갖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학부 시절, 취업, 대학원생 시절을 지나면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어쩐지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그 일이 끝내 내키지 않고,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거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글을 써도, 나는 초점이 되는 대상을 넘어서서 그 언저리의 다른 영역으로 자꾸만 확장하고 싶어진다. 아무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표면적인 대상들 사이에서 연결점을 찾아내고, 더 거대한 단위의 흐름으로 풀어내려는 내면의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마음이 향하는 대로 살다보니, 나는 국문학과 학생이자 컴퓨터-인간 상호작용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이 되었고, 인지심리학 석사 학위자가 되어있었고, 방송국 PD가 되기도 했고, UX 디자이너가 되기도 했다. 나는 어떤 타이틀이든 뒤집어쓰고 위장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였다.


언젠가 이런 나 자신을 푸념하다가 알게된 점. 이런 욕구는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질 수도 없고, 흔한 것이 아니라는 점. 나는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 나를 오랫동안 봐온 모든 사람들은 가장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했다. 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 마음이 주는 위로가 정말 큼지막한 것이었다. 나는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 또 한 가지에 집중해서 장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도, 아주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뭣보다 중요한 건 내 재능이 뭔지를 깨닫는 것. 그리고 그 가치가 잘 발휘될 수 있도록 건강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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