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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점심, 김가네 김밥 앞에서

by bigbird

일요일 점심, 김가네 김밥 앞에서

일요일.
어김없이 찾아오는 휴식 같지만, 이상하게도 일요일 점심은 늘 고민스럽다.
뭘 먹을까.
아주 작은 고민이지만, 그 작은 고민이 하루의 리듬을 잡아주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김밥이 떠오른다.
그 순간부터 선택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집 근처 김가네.

오래된 간판, 익숙한 테이블, 그리고 늘 비슷한 메뉴.
그곳엔 일상의 맛이 있다.
김밥 한 줄을 주문하며 메뉴판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언제부턴가 김밥 가격은 5천 원이 됐다.
라볶이를 함께 시키니 영수증엔 1만 3천 원이 찍힌다.
김밥 한 줄과 라볶이 한 접시가 외식 메뉴가 되고,
작은 사치가 되고,
일상의 기준이 된다.

문득 2007년이 떠오른다.
천 원 김밥이 유행하던 시절.
학생들도, 직장인도, 주머니 사정 가벼운 이들도
부담 없이 사 먹던 그 김밥.
그때와 비교하면 18년 사이 다섯 배나 오른 셈이다.

생각해보니 블루클럽도 그랬다.
한 번 깔끔하게 자르면 5천 원.
그 시절엔 그 금액이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1만 3천 원이 넘는다.

시간은 흘렀고, 가격표는 변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변화가 언제 시작됐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물가는 오르고,
사람들은 여전히 말한다.
"급여는 그대로"라고.
하지만 사실 급여도 조금씩 올라왔다.
다만, 물가 상승 속도가 더 빨랐을 뿐이다.
돈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게 줄고,
자산의 가치는 차곡차곡 올라간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돈을 번다는 것은
그저 지갑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가치를 보존하는 기술이 되었다.

특히 은퇴자나 퇴직자에게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는
뉴스 속 경제 용어가 아니다.

그들의 시간, 노력, 삶의 결과물인 자산을
서서히 깎아 가는 조용한 파도와도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산과 현금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하고,
어떤 현금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김밥 한 줄 앞에서 시작된 작은 생각이
삶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이다.

가격표를 보며 놀라고,
그 가격에 적응하며,
다시 올라간 가격 앞에서 또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김밥 한 줄을 먹으며
“그래도 일요일은 좋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여전히 삶이 우리에게 여유를 남겨두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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