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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혁 May 11. 2019

나는 고라니다.

우리와 닮은 가련한 동물

  장흥에 있는 선산을 다녀오는 길 주시하던 도로에 왠 낯선 물체가 뛰어 들어온다. 몸집이 작긴 해도 그것은 분명 고라니였다. 빠르게 달리던 것이 아니라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는 걸까? 고개를 몇 번 까딱거리더니 큰 눈으로 나를 몇 초 쳐다본다. 사고가 날뻔한 상황보다는 찰나의 시간 서로가 주고받은 눈빛이 강열했던 순간이었다. 합이라도 맞춘 듯 우리는 고개를 돌리고 서로의 갈 길을 갔다.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그 녀석의 모습과 눈빛이 인상적이어서 그랬을까? 한동안 난 고라니에 빠져있었다. 


고라니의 모습 - 위키피디아


  고라니는 평범한 사슴처럼 보이지만 귀여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이 송곳니는 주로 암컷이나 영역을 두고 수컷끼리 다툴 때 쓰이는데 정작 뭇 짐승을 만나면 고라니는 놀라서 도망가기 바쁘다고 한다.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만 반가운 동물은 아니다. 특히 농부들에겐 농작물을 해치는 유해동물로 분류되는데 어떤 지역은 피해를 막고자 주기적으로 고라니 포획과 사냥을 나가는 곳도 있다. 고라니와 함께 유해동물로 분류되는 멧돼지는 별미로 종종 먹기도 하지만 죽은 고라니의 사체는 식용으로도 인기가 없어 그냥 땅에 묻어버린다. 농부의 삶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선 어떨까? 고라니가 언급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로드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마저도 자동차 범퍼라도 떨어지는 사고로 이어진다면 "더럽게 재수 없다."며 죽어서도 욕먹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천대받는 고라니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멸종위기(VU, Vulnerable) 수준에 등재된 동물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만 토착·희귀종으로 그마저도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계속해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어서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고라니와 같은 수준의 멸종위기종은 사자와 하마 정도가 있다. 전체 고라니의 개체 중 90%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재수 없는 동물'정도로 취급하고 있으니 괜스레 측은해진다. 

  다양한 죽임을 당해도 고라니는 우리나라에 여전히 많다. 국내에서 고라니의 개체수가 증가한 이유는 국내의 생태계에서 고라니의 천적이라고 부를 만한 짐승들이 멸종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는 문헌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곰, 호랑이, 늑대, 표범 등 많은 수의 맹수가 포획과 죽임을 당한 결과 천적이 없는 고라니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산에서 나는 식량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고라니는 민가로 내려와 농작물을 습격하거나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도중에 로드킬로 죽는 것이다. 생태계라는 시스템을 파괴한 장본인이 고라니의 탓을 하고 있으니 고라니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국내와 국외에서 상반된 고라니의 신분을 보고 있으면 비참한 우리의 삶과 닮았다. 고리니를 닮은 누군가는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고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누군가의 소리에 상처를 받았을 거다. 그리고 죽어야만 뉴스에 몇 줄 정도 나가는 사회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지금 당장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진 못해도 우리도 어딘가에선 둘도 없이 소중하고 쓰임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 거다.


요즘따라 취직과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 기사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고라니 문제의 원인이 고라니가 아닌 생태계에 있듯 우리 문제의 원인도 개인에게만 있지는 않을거다. 고라니가 된 우리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또 죽는다.


과연 우리는 본인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사람들을 보며 

죽음의 원인을 비관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허름한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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