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준혁 Jun 08. 2019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노년을 위한 저축뿐일까?

#백수가되기로결심했습니다 #슬픈현실 #행복을찾아서 #로또라도맞아야가능한일



  스스로 "백수가 되겠노라!"라고 선언하고 나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일까요? 사실 쉽게 예상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응원의 말보다는 걱정의 말을 훨씬 더 많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백수가 된다는 놈한테 "야 백수 된 거 축하한다. 열심히 한번 해봐"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거니깐요. 걱정의 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것은 제 금전적인 어려움을 걱정해주는 말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래...", "생각해본 일자리는 있어?", "어려우면 언제든 말해 밥이든 술이든 사줄게" 따뜻한 밥이나 맛 좋은 술을 언제든 사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면 참 잘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먹고사는 것을 떠나서 일자리를 놓아버린 사람에게 다시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일자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말들은 저에겐 참 당혹스럽습니다.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을 면피하고자 살짝 장난을 쳐봅니다. "나 사실 로또에 당첨됐어..." 현실감을 보태고자 1등은 아니고 같은 번호로 2등이 3번 당첨되었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꺼내 당첨금액을 검색해보다가 저마다의 반응을 보입니다. 당첨금으로 무얼 할 것인지 묻는 사람, 당첨금의 수령방법에 대해 묻는 사람도 있었고 어디서 로또를 구매해야 하는지 물어보거나 심지어는 1등 당첨금과 비교했을 때 얼마 안 되는 돈이니 알차게 써야 한다는 훈수를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가 어느 정도 속았다 싶으면 농담이라는 말과 함께 나를 위해 살아보고자 백수가 되었다고 다시 말해 줍니다. 이런 대화들을 마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우린 어쩌다 로또라도 당첨돼야만 그제야 나를 위해 살아보는 것을 궁리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걸까라는 의문을 생깁니다. 



혼자서 1억을 모으는데 드는 시간


  인터넷에서  '혼자서 1억을 모으는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연봉 대비 월 실수령액을 기준으로 두고 최저생계비(2인 기준)를 뺀 금액을 월 저축액이라고 가정할 때 1억까지 모으는 시간을 알려주는 자료였습니다. 사회초년생의 희망연봉으로 알려진 연봉 3천만 원의 경우 1억까지 14.4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연봉이 5천만 원이 되면 4.4년이 걸리는데요 웃기면서 슬펐던 부분은 연봉 2천만 원의 경우는 월 실 수령액보다 최저생계비가 더 높아 1억 저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매 월 16만 원씩은 적자인 셈이죠. 아이라도 둘이 생겨 4인 가족일 때는 최저생계비가 올라 연봉이 4천만 원이 되어서도 1억을 저축하기 까지 30년이나 걸립니다. 1억이란 숫자는 부의 상징과도 같은 금액이라서 실제 내 생활과 비교해가며 언제 모을 수 있을지를 계산해볼수록 괜히 내 삶이 더 초라해 보이기만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고선 다시금 그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써버리는 중년이 많습니다. 불안한 미래를 염려해 젊음을 담보로 많은 돈을 벌어 놓고서는 잃어버린 젊음을 후회하며 뒤늦은 열정을 불태우는 노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건강과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독 미래의 금전적인 상황을 염려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는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하고, 저축습관을 들여야 하며, 재테크에 능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나를 위해서는 살아보지 못합니다. 돈을 모으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나를 위해 잘 써본 적은 없는 거죠.




  저 역시도 얼마 전까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현재를 맹목적으로 살았습니다. 단순히 저축뿐이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보상을 일로 받고 싶어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일에 지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노년을 위한 저축뿐일까?" 그러고선 바로 백수를 선언하고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미래를 염려하는데 쓰이는 제 젊음의 방향을 바꾼 것이죠. 가만히 있어도 제 젊음의 시간은 흘러가겠지만 이제부턴 적어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미래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리는 미래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만이 최고가 아닐 뿐이죠. 현재를 살아보겠다고 백수 선언까지 했으니 저는 앞으로 하루하루를 유의미하게 살아가려고 최선의 노력을 할 겁니다. 후회 없는 젊은 시절을 보내기 위해서 말이죠.


여러분은 지금 현재를 충분히 살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미래를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나요?



#허름한 허세

작가의 이전글 디베이트의 기원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