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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Sep 07. 2023

아날로그에 살으리랏다

우리 카페엔 없는 게 많다. 우선 모든 카페에 있는 커피머신이 없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뽑아주는 이점을 이 카페에서는 누릴 수 없다. 계산하는 방법도 다르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는 물론이거니와 메뉴를 누르면 알아서 가격을 계산해 주는 포스 단말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계산기 기능만 갖춘 조그만 단말기만 있을 뿐이다. 번호를 누르면 손님이 와서 자신이 시킨 음료를 가지고 가는 진동벨도 거부한다. 뭐든 시키면 손님이 있는 곳으로 음료나 디저트를 직접 들고 간다. 상당수 카페에서 쓰는 소위 공장형 케이크도 없다. '수제 케이크'라고 거창하게 부를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조그맣게 케이크를 만들어 간다. 메뉴판도 일반 프랜차이즈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글씨로 찍고 음료 사진을 직접 찍어 만든 ' 홈메이드(home-made)' 메뉴판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조차 인공지능(AI),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생활 속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시기에, 무인기기가 앞다퉈 나오는 디지털 시대에 이게 무슨 구시대 유물이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화 한 통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할 수 있으나, 굳이 몸을 쓴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리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첫째는 비용. 커피머신은 아무리 싸도 700만~800만 원은 줘야 한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면 1000만 원대는 훌쩍 넘어간다. 진동벨도 최소 몇십만 원대. 100만 원대에 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약간의 노력만 들이면 필요 없는 것을 만들지 말자. 사장님과 노예의 공통된 생각이다. 또 하나는 우리 부부 모두 기계와는 담을 쌓았다는 것이다. 기계가 편리함을 주기는 하지만 관리를 제 때 하지 않으면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불행히도 나와 아내는 이를 감당할 만한 능력자가 못된다. 결국 전문가들을 불러야 한다. 이곳은 섬(왜 그런지는 모르나 택배를 시켜도 섬 배달 비용을 받는다)이라 다른 곳보다 50% 이상은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아내가 자신의 물건에 남의 손이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원하는 위치, 필요한 자리에 놓이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그냥 대충 하지'를 생활신조로 하고 있는 노예와는 전혀 반대다. 

선택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하자.’ 커피는 머신 대신 드립으로 내린다. 시간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의외로 좋은 점이 있다. 뜨거운 물을 분쇄한 커피 위에 부었을 부풀어 오르며 만들어지는 봉긋함은 묘환 감동을 준다. 살아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치 내 손으로 또 다른 생명이 탄생시키는 듯하다. 기계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기계는 결과물만 보여주지만 사람의 손은 시작과 끝을 모두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우리 카페에 오는 손님은 음료를 가져가지 않는다. 대신 사장이나 노예가 직접 갖다 준다. 원래는 손님과 되도록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괜히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다. 시간이 지나며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쟁반에 받쳐 가져가면 어쩔 수 없이 손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그냥 놓고 오지만 몇몇 음료는 먹는 방법을 설명해 줘야 한다. “자두에이드는 청이 밑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빨대로 잘 저어서 드세요” “아인슈페너는 빨대로 드시지 말고 그냥 컵 채 들고 마시는 게 좋습니다.” 이런 말을 전하면 손님들은 백이면 백 모든 “고맙다”라고 한다. 손님은 의례적으로 던지는 말일 수 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온기로 다가온다. 

메뉴까지 전달하고 나면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손님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일부로 듣지 않으려 이어폰을 끼거나 책을 펼쳐든다. 차를 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듯 지나간다. 마치 집에서 혼자 차 한 잔 하며 듣는 레코드판의 음악 소리 같다. 

물론 그렇게 자랐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식 레코드판은 어릴 적 내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해적판이라 불리는 ‘빽판’ 정도. 복사를 한 탓에 표지의 인물은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누렇게 변해 있었고 누런 한 서너 번 듣다 보면 ‘삐익’하는 쇳소리도 낸다. 그래도 그때는 소음이 있는 레코드판이 그렇게 좋았다. 스크래치 난 레코드 판에 음악이 나오는 도중 툭툭 튀거나 계속 똑같은 곳만 반복 재생하는 빽판을 떠올리면서 '내 삶 역시 해적판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해 본다. 

나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계산하는 것. 포스는 해당 메뉴를 누르면 자동으로 합계액을 보여주지만 우리 단말기는 그런 기능이 없다. 직접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끔 깜빡하거나 두뇌 회로가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돈을 더 받았을 때는 그래도 낫다. 계산을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돌려주면 되니. 덜 받았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계산을 마치고 돌아갔는데 다시 가서 '내가 착각했으니 더 지불해야 한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돈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는 탓이다. 이럴 때는 덜 받았어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말한다. "이러니 나이 든 사람을 안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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