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자려고 스마트폰을 덮었다. 하루간 있었던 일들이 급한 마음을 모르고 저마다 손을 들고 자기를 떠올려달라고 난리를 피운다. 애써 침착함을 찾고 지나간 일들을 무시하며 아침을 대비해 잠을 청한다. 그런데 웬걸 새로 산 인터넷 공유기의 파란빛이 방을 밝힌다. 퍼런 빛. 손톱보다 작은 점 고작 6개. 그 티끌만 한 불빛이 몇 개는 깜빡거리고 몇 개는 자리를 지키며 꿈쩍 않고 퍼런 빛을 내뿜는다. '하아, 제발 좀' 속으로 되뇐다. 너무 미약하고 하찮은 거라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20분가량을 뒤척였을까, 나는 먼지만 한 겨우 6개의 푸른빛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안경을 찾았고, 궁시렁대며 침대에서 일어나 책 한 권을 뽑아 빛을 막았다. 후련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풀썩. 개운한 마음으로 잠에 들어야겠다 생각이 든 순간, '우우우우웅' 소리가 방안을 메운다. 맙소사, 냉장고가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러고 보면 '뭐 하나를 처리했으니 이제 신간 편하겠지'라는 생각은 어째 성립이 안 되는 문장 같다. 살면서 절실히 느낀다. 나는 줄곧 지금 내 앞에 있는 거대하고 묵직한 인생 일대의 숙적을 처리하고 나면 비로소 편안함에 이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작게는 학창 시절 시험, 대학생 때 과제였고 크게는 사랑이거나 취업 같은 거였다. 지금 와서 보면 찬란하게 이룬 것도, 비참하게 쓰라린 패배를 한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훌륭한 성공 뒤에도 그 뒤에는 해결되지 않은 영원한 숙제 같은 점들이 남았었다. 처절한 실패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만족, 그러니까 편안함에 이른 적은 전무후무하다. 아, 물론 일시적 순간의 후련함은 성공의 뒷 맛으로 남았었다. 찰나로 말이다. 마치 6개의 불빛들의 숨을 죽이고 침대로 돌아와 냉장고의 존재감을 알아차리기 직전처럼 찰나로 말이다.
이 정도면 이제는 알아차려야 한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만족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명대사처럼 편안함에 이를 수는 없을 수도 있다. 빛의 발원지의 크기를 다 합쳐도 새끼손가락 손톱만 못한 불빛에 흔들리고 그걸 해결했지만, 또 다른 작은 소음에 흔들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앞서 말한 저주 같은 문장들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는 '왜 나는 이럴까'하는 불평불만은 조금 줄일 필요가 있겠다. 어차피 모든 게 적절해질 수도, 충분할 수도 없는 인생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과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어제 내가 냉장고의 시끌벅적함에 적응하고 결국 꿈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한 것처럼 말이다.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 또한 인내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대로 배움이 없이 끝이 나면 재미가 없다. 내가 잠에 들기 전 집을 구할 때 원룸 냉장고 소리를 염두에 둬야겠다 다짐했던 것처럼, 하나씩 배우면 된다. 엠비티아이라는 사소한 설문에도 세상 사람들이 사분오열되는 요즘, 내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시큰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의 정점에 선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만족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불안을 품은 듯한 말을 쏟아낸 것을 보면 끝내 인간은 "흡족함" 앞에 섰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았을 듯싶다. 이제 자기 최면을 걸어보면 한마디 해본다. 냉장고야 덕분에 아주 사소한 것도, 몇십 년을 관통할 만한 깨침도 얻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