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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김에 Jul 08. 2021

연애를 모르는 사람의 연애

결코 따뜻하지 않은 연애

이런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 사람도 내게 관심을 보였다. 늘 그랬듯이 처음엔 괜찮았다. 만나기도 했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날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날이었을까? 두 번째였을까? 아마도 내가 거절하고 거절하다 만났던 걸로 기억한다. 만났을 때 길을 한참 걸어 비디오 테이프를 빌린 걸로 기억한다. 그날은 비도 왔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그 사람이 하자는 데로 했다. 이미 만남을 거절할 데로 거절했던 나는 그냥 한번 그 사람의 말대로 해주기로 했다. 영화, 잘 보지도 않는 거였다. 나는 그때 가수에, 노래에 미쳐있었으니까. 어쨌든 그 사람은 비디오테이프를 빌렸고,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데로 하게 내버려 뒀다. 그리고 그 사람 집으로 갔다. 영화를 보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제목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영화. 나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도, 그 사람을 잊고 있다가도 그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거나 하면 여전히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그저 스킨십이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려고 그렇게 먼 길을 걸어가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나? 오직 그거 하나 때문에? 나는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고, 그 사람은 그렇게 그 다음날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런 xx. 다행인 건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뒤로 그 사람을 보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빌렸던 그 영화는 선명하게 기억되어 날 따라다닌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생각하기 싫은 그 사람이 떠오른다.

 저기 저 아래 보일 거 같지도 않은 저 동굴 안쪽 갈기갈기 찢어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았건만, 그 영화가 가끔 텔레비전에 나올 때는 채널을 돌려 버린다.

그래서 난 아직도 그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른다. 요즘같이 드라마며 영화며 즐겨 찾아보는 중에도 그건 절대 볼 생각이 없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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