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색될 때 아름다운 것이 추억이라 해도
7년 만에 홀로 여행을 떠났다.
2017년 여름은 군 입대를 앞두고 순천으로.
2024년 여름은 사회생활 초년생으로서 고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가면 무조건 사진을 찍게 된다.
추억은 빛바래고 윤색될 때 아름다운 것이라는데, 그럼에도 놓치기 싫은 순간들이 셔터를 누르게끔 한다.
그러한 순간들을 엄선하여 담아보았다.
강원도 고성 여행 첫날.
그늘막에 돗자리 깔고 책을 읽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라도.
부서지는 파도소리. 함께 불어왔던 바람. 미칠 듯이 높은 하늘은 시원한 여유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고성의 봉포 머구리집.
물회에 소주.
다 좋은데 성게는 아직 나에게 힘들었다.
성게의 비릿함을 소주로 헹궈냈다.
어..? 이게 삶인가?
물회에 소주를 비워내고 해변을 정처 없이 걸었다.
계속 앞으로만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삼십 년도 안된 인생에 뒤돌아볼 순간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무언가 나아져야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 날 아침은 뛰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아침햇살의 아름다운 러닝을 생각한 건 사실이다.
숙소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마주한 찬 공기에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비웃기라고 하듯, 떠오르는 햇볕이 무자비하게 정수리를 덥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천천히 목표한 거리를 완수하고, 시원하게 음료를 들이키며 해변을 바라보다 마주한 광경.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이 마냥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음에는 나도 꼭 가족하고 같이 와야겠다.
둘째 날 점심은 고성에서 유명하다는 돈가스를 먹으러 왔다.
혼자 왔더니, 대기 순번이 7번임에도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
혼자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니, 돈가스에 하이볼을 거침없이 시켜버리는 나 자신에게 너 좀 멋진데? 행복한데?라고 말해주었다.
할머니댁.
이겠냐?
우리 할머니는 서산에 계신다.
고성이 위아래로 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카페 투어.
커피도, 옥수수타르트도 너무 맛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던. 하염없이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구슬땀을 흘리며 참아냈던 그 기억.
여행의 묘미지 암. 그렇고말고.
원래 이런 기억이 제일 오래가는 법.
수영을 못해서 바다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는데,
후회할 게 불 보듯 뻔해서 숙소 사장님께 구명조끼를 빌렸다.
겁이 났던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더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막상 하니까 미친 듯이 좋았던 케이스.
아. 장기하 가수의 <해>를 들으면서 입수할걸.
까데호.
와인바 이름은 슬로우 댄스이지만, 내가 디깅하게 된 것은 와인이 아닌 까데호.
여름의 최전선과 맞닿아있는 밴드가 아닐까.
<Freesummer> 앨범은 꼭 들어보시길!
저 멀리 오징어잡이 배가 보인다.
치열한 삶의 현장 앞에서 근사한 조명 역할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웃어요.
돌아오는 것은 항상 어렵다.
서울행 버스 안에서 헛헛하다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더라.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맞는데 내가 이번 여행에서 무언가를 채워왔나?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계절에 맞게 한 여름을 관통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좋은 여행이었다
내일도 출근이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