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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02. 2019

교생선생님의 진심1

사랑하는 2학년 2반 친구들에게

2학년 2반 친구들아, 각자에게는 작은 쪽지에 편지를 한 통씩 써보았는데 그곳에는 선생님이 말하지 못했던 진심이 다 담기지 않은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이곳에도 너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담아볼게.    


 선생님이지만 학생이기도 한 나는 이번 학기에 너무 너무 휴학하고 싶었어. 학기 단위로도 휴학할 수 있거든. 너희들이 공부와 진로 때문에 힘들어하듯, 사실 나도 별반 다를 바 없구나. 내색은 안 했지만 사실 나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각보다 많이 컸단다. 학교 다니면서 임용 준비하는 거 대신에 미국으로 인턴십을 떠날까, 해외로 한 달 살기를 갈까,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까 수없이 고민했어. 선생님은 수학에 영 흥미가 없고(이건 말했지?) 전공이 많이 어렵기 때문에 매 학기가 꽤나 고역이었거든. 그러던 와중에 내 은사님, 그리고 너희들의 은사님이신 나래 선생님과 지난해 말쯤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번 이번 학기라는 두려움에, 교생실습이라는 큰 산에 덤벼보기로 결심했지. 그렇게 시작된 거야. 내 원주여고 교생실습.

 학교에 오니 고등학교 2학년을 배정해주셨어. 고등학교 2학년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그때 난 어땠나 생각해보니 나는 고등학교 때 학업 스트레스만큼 친구관계의 스트레스에서 절대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진짜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드는 친구들을 딱히 만나보지 못하기도 했고(잘 맞았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고), 중학교 때 왕따를 한두 차례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인간관계에 더 예민하기도 했어. 혹시나 내가 밥 혼자 먹을까 봐. 혹시나 내가 이동수업 때 혼자 갈까 봐 무섭더라고. 지금은 밥도 혼자 짱 잘 먹고 수업도 혼자 짱 잘 듣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 두렵더라. 너희도 그런가? 그래서 혹시나 반에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가 있을까 봐, 마음이 아픈데 내색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을까 봐 정말 많이 걱정했고, 어떻게 그 친구들이 반에 잘 어울리게 될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고민했단다. 어쩌면 그것이 학급운영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 누구 하나 모난 구석 없이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각자의 역할을 갖고 학급을 오밀조밀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걱정 다 내려놓았어. 반 분위기 정말 따뜻하니 좋더라고. 그게 너희들의 첫인상이었어. 따뜻함. 포근함. 넓은 마음. 장난기 많은 웃음 뒤에 숨겨진 세심함. 헤헤 쓰다 보니 내 성격이랑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다.(TMI였어!)

 그 뒤로 너희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 순간은 여러 차례 있었어. 나는 사실 누구한테 말 걸고 다가가는 거 잘 못해. 친해지면 누구보다 왈가닥에 텐션 조절도 못해서 맨날 분위기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데 그 친해지기까지가 너무 힘들어. 연습해서 많이 나아졌는데도 아직 어려워. 그런데 교생실습에서는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도 선생님인데 학생들한테 먼저 말도 잘 못 걸면 안 되잖아. 나 옛날에 우리 반 교생선생님이 나한테 말고 다른 애들한테만 말 걸어주면 되게 서운했거든. 그래서 용기를 내려고 했다? 막 일부러 오버하면서 당차게 인사하고?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내가 그렇게 과하게 노력하기도 전에 너희들이 나를 2학년 2반에 자연스럽게 융화시켜주더라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무슨 말이라도 항상 먼저 말을 걸어주는 너희들, 선생님 할 말 있다며 마음속의 고민들을 털어놓는 너희들, “선생님 남자 친구 있어요?”하며 방글방글 다가오던 너희들. 난 너희들에게 그런 예쁜 발걸음을 배웠어. 나도 다음에 누가 나에게 다가오기 어색해하면 먼저 그렇게 꼭 해주자고 결심했어.

 그리고 선생님의 고민을 같이 고민해주는 너희들에게도 너무 고마웠어. 사실 첫날부터 선생님이 될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까지 deep 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거든? 대학을 향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텐데 대학에 간 사람이 자기는 대학이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뭔가 힘 빠지잖아. 근데 너무 당황했는지 주절주절 진심이 툭 나와 버린 거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것 같아. 너희들에게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가게 된 계기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너희들은 정말 많은 힘이 되어 주었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친구들이 내게 ‘선생님, 교생실습하시니까 선생님에 대한 꿈이 생기셨어요?’라고 묻거나, ‘선생님, 그럼 선생님의 꿈은 뭐예요?’라고 물었거든. 한 친구의 편지에는 ‘선생님이 되실지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선택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수업을 열심히 들었어요!’라는 말도 적혀있었어. 감동의 눈물ㅠㅠㅠ. 그때 너희들의 진심은 같이 진로를 고민하고 달려가는 마음을 알고 따뜻한 위로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겠지. 사랑둥이들!

 그런데 있잖아. 한편으로 나는 너희들에게 미안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떤 엄마가 내 자식들한테 남들보다 더 좋은 분유 먹이지 못하는 마음. 적절한 비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혹시 그 마음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선생님은 너희들을 볼 때마다 미안했어. 다른 교생 선생님들은 첫 주부터 간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학급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시고, 카메라랑 삼각대 이것저것 챙겨 오셔서 학급 친구들의 예쁜 모습을 많이 찍어주시는데, 너희들도 그런 걸 엄청 좋아할 것 같아서 해주고 싶은데, 선생님은 그런 예쁘고 아기자기한 거 잘 못하기도 하고, 뭔가, 너희들을 진정으로 챙겨주는 방법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은 거야.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내 장래희망이 교사가 아니어서 그런 걸까?’하는 괴상한 고민까지 들더라고. 그런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 왜냐하면 나는 너희들을 많이 좋아했거든. 내 생각에는 그런 사랑의 방식이 내 가치관, 내 성격이랑 결이 안 맞았던 것 같아. 나는 오히려, 그렇게 챙겨주는 것보다 조금 더 지식 전달자의 모습이 되고 싶었나 봐. 너희들이 나랑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수학에 흥미를 붙이고 한 번이라도 더 옛날에 배웠던 걸 복습해서 내가 간 다음에 수학 공부를 할 때 1%라도 덜 힘들게 하고 싶었고, 그래서 진로 선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더라. 그래서 너희들이 수학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렇게 다가가서 바라보고 싶었고 뭐가 어려운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다른 반 친구들에게 아름아름 들려오는 “어느 반 교생선생님은 애들한테 이거 줬대!”이런 소문에 너희들이 괜히 위축될까, 혹은 이런 다가감(뒤에서 수학 문제 푸는 거 지켜보는?)이 오히려 불편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아. 쌤이 너희들에게 진심을 눈에 보이도록 많이는 표현하지 못한 채 교생 기간이 끝나버렸지만 내 진심은 이랬다는 거. 꼭 말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내 미안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나는 혹시나 내가 한 명에게라도 말을 덜 걸었을까 봐 미안해. 누구보다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일관된 선생님이 내 목표였는데, 그래서 모든 친구들의 고민을 다 들어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주에 피보나치수열 연구수업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가고 나니까 글쎄 교생 기간이 끝나있는 거야. 아직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친구들도 많은데 말이야. 나는 그게 너무 미안해. 아차 싶더라. 사실 선생님이 교생 대표였거든? 그래서 너희들을 챙기는 만큼 교생선생님들도 한 분 한 분 챙겼어야 하는데 교생 마지막 주에는 우리 교생선생님들도 많이 챙기지 못했고, 그 주에는 가족들에게도 내내 소홀할 만큼 그냥 정신없고 정신없었어. 아무리 정신없어도 너희들은 챙겼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교생기간 목표는 매 점심시간마다 들어가서 너희들이랑 한 마디라도 더 붙이고 한 명 한 명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 어떤 고민을 하고 사나 들어주는 거였는데 글쎄, 내가 그 역할을 잘 감당했나? 그래서 선생님은 자체적으로 교생기간을 늘리자고 결심했어! 기한은 무기한이야. 앞으로 너희가 나한테 어떤 방식으로 연락해서 어떤 고민을 이야기하던지, 어떤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주던지 교생 그때의 그 마음 변치 말고 똑같이 대하려고 해. 아니다, 살짝 더 편하게 언니 같은 느낌도 주고 싶네. 그러니까 무슨 일 생기면, 그게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친구 문제든, 진로 문제든,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큼 도움이 되고 싶어. 다들 언제든 연락해줘. 알겠지? 너네 내 첫 제자들인데 이렇게 빠이빠이 할 수는 절대 없지.

 얘들아, 가장 예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너희들의 긴 인생의 이 시기에 잠시 머무를 수 있어서 많이 행복했고, 앞으로도 너희 한 명 한 명이 잘 커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쭉 지켜볼게. 너희들도 선생님이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마구마구 뿜어내는 모습을 잘 지켜봐 줘. 너희들에게 좋은 인생 선배, 멋진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갈게. 항상 고맙고 사랑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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