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필사
누군가의 에세이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뉴스에서 논란이 되는 유명인들의 기사들은 가끔 검색해 보지만, 남의 인생사가 담긴 에세이는 왜 이렇게 읽기가 불편한지…. 너무 훌륭한 이들의 인생을 보면 부럽고, 어려운 이들의 삶을 읽으면 안타까워 마음이 씁쓸해지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일조선인 2세의 서경식 작가의 에세이 <소년의 눈물>은 의외로 책장이 잘 넘겨졌다. 이 책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다니 ‘얼마나 훌륭한가 보자’라는 심리 때문일까? 독서 이력과 삶에 관한 작가의 소탈하고 솔직한 문장들이 꽤 흥미로웠다. 그렇게 술술 페이지를 넘기다 <왕자와 거지>에 관한 작가의 소회를 읽고 마음이 잠시 멈췄다.
“언젠가 진짜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오시지 않을까?”
작가는 이 동화책을 읽고 나면 “대개의 아이가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한다고 전했다. 그 역시도 어머니의 사랑을 잘 알고 있지만, “‘평범한 일본인’이 본인의 ‘진짜 부모님’이 얼마나 좋을까?”라는 공상을 했다고 말했다. 그 시절 조선인에 관한 차별, 멸시, 무시 등등 그런 복합적인 혐오의 감정들이 어린 서경식의 마음에 조용히 자리 잡았나 보다. 작가의 글처럼, 어른들의 세계에 가득 찬 부정적인 기운들은 어린이들의 작은 몸에 너무도 쉽게 빨려들 테니까.
어린 시절 나 역시도 <왕자와 거지>를 읽고 작가와 같은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는 ‘평범한 일본인’을 ‘진짜 부모님’으로 꿈꿨지만, 내가 상상했던 인물들은 ‘칭찬을 잘하고 말을 잘 들어주는 자상한 엄마 아빠’였다.
한국 전쟁을 겪고 험난한 민주화 시기를 거친 부모님 세대는 참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라는 생존의 목표 앞에 참 열심히 살았기에 감수성이 강한 딸의 헛된 공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1분을 넘지 않는 전화 통화, ‘빨리빨리’의 습성이 몸에 밴 바지런함, 효율을 먼저 따지는 습관 등등 경제발전만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던 그 시절의 모습들은 부모님의 지금 행동 속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특별한 의미의 순간이라고 했던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요즘,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부모님은 ‘그 시절 가난해서 힘들었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시절 부모님이 무서워서 힘들었다’라고 말하곤 한다. 서로 일치되지 않는 의견들이 같이 보낸 시간 속에서 널뛰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그 시절의 부모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자상하고 이해를 잘해 주는 엄마 아빠였다면 나의 어린 시절이 참 행복하고 좋았겠다’라는 상상만은 지울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왠지 질문하기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