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내가 가질게>-서평
“바늘 끝 위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출 수 있나.”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비롯된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논쟁할 가치가 없는 주제라 한다. 당대의 학자들이 날카로운 바늘침 위의 천사들을 헤아리며 열띤 논쟁을 벌였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그 웃음 끝에 묘한 씁쓸함이 남는다. 이성의 논리로만 인간의 세상을 설명할 수 없듯, 그들의 논쟁은 결국 인간이 단순히 계산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바늘 끝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본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몸의 균형을 잡는 이들은 ‘세상에 그런 일이’라는 탄식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 안보윤의 소설집 <밤은 내가 가질게>(문학동네, 2025)는 그 바늘 끝 위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 상처와 그 상처를 견디는 인간의 품격을 말한다.
안보윤은 2005년 『악어 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일상의 폭력과 구조적 부조리를 문학적으로 성찰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사회의 사각지대를 냉정하게 응시해 왔다. 안보윤의 문장은 냉정하지만, 그 차가움은 인간을 향한 정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 『소년 7의 고백』 이후 5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소설집 『밤은 내가 가질게』에는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애도의 방식〉을 비롯해, 현대문학상 수상작 〈어떤 진심〉, 김승옥문학상 수상작 〈완전한 사과〉가 실려 있다. 완성도 높은 서사와 입체적인 인물, 촘촘한 묘사로 평단의 극찬을 받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익숙한 도덕의 틀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견디며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수록된 일곱 단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의 현실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어떤 진심’과 ‘미워하는 일’은 사이비 종교단체 ‘믿음이샘솟는교회’를 중심으로 한다. ‘완전한 사과’와 ‘애도의 방식’은 가정과 학교에서의 폭력을 다루며,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미도’, 그리고 ‘밤은 내가 가질게’는 학대와 돌봄,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구조 속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인물들을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반복적으로 놓으며, 누구도 폭력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그 중심에는 ‘미도’가 있다.
표제작인 ‘밤은 내가 가질게’를 포함한 세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미도는,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딴 단편 ‘미도’는 그녀가 지나온 삶의 여정을 그린다. 어린 시절 ‘모자란 아이’라 불리며, 엄마의 가스라이팅 속에서 성장한 미도는 돌봄 방 아이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엄마를 위해 변호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동 ‘주승’을 맡은 어린이집 교사, ‘미도의 동생’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밤은 내가 가질게’는 학대를 당하는 주승의 이야기와 사기를 당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교차로 전한다. 이 작품은 ‘선의’를 둘러싼 세상의 부조리를 응시한다. 미도의 동생은 그렇게 언니의 세상을 마주하며, ‘선의’가 어떻게 상처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너는 그게 선의라고 생각하지? 돌아보고 미적거리고 자꾸 여지를 남기는 거. (중략)
이 세상은 공평해.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 (p.231)
소설 속 세계는 약한 자가 보호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는 공정한 세상이 아니다. 선한 성정의 미도는 사기꾼에게 속아 필요 없는 배도라지 즙을 사고, 오피스텔 전세금마저 빼앗긴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은 미도의 유일한 위안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난 개 ‘토리’다. 그녀는 개의 원래 이름이었던 ‘밤톨’의 은색 펜던트를 풀어내며, 조용히 말한다. “밤은 내가 가질게.” (p.251) 토리의 묵은 상처를 끌어안던 미도의 선함은 결국 세상에 의해 짓밟힌다. 이후 〈완전한 사과〉에서 그녀는 뜻밖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착한 미도에게, 삶은 여전히 냉혹했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이루어지는 용서에 대해서도 냉정한 시선을 던진다.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의 ‘하진’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폭력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녀는 대학 조교의 신분을 이용해 자신의 집을 침범한 선배의 범죄를 암묵적으로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린 시절, 하진은 엄마에게서 목 졸리는 끔찍한 공포를 겪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녀는 ‘한 번이었다’는 말과 ‘사랑이었다’는 말로 상처를 봉합당했다. 상처는 치유가 아니라 억압의 이름으로 덮였다. 그 선배를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엄마에게, 하진은 이렇게 외친다.
“엄마, 내 침묵은 용서가 아니야. 내 침묵은 나를 위한 거였어.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가 지금까지는 침묵밖에 없었던 것뿐이야. (중략) 나는 계속, 늘, 엄마가 두려웠어요. 정말이지 엄마가 끔찍했어.” (p.135-136)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처를 끝내 치유받지 못했다.
<밤은 내가 가질게>의 표지는 분홍빛 점성이 느껴지는 물결무늬와 숨겨진 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응고된 피를 연상시키는 그 질감은 인물들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의 온도를 시각화한다. 분홍빛 점성이 느껴지는 물결 속의 구(球)들은 각 단편이 시작될 때마다, 때로는 하나로, 때로는 둘로 등장하며 서로 연결되고 엉켜 있는 세상의 모습을 은유한다. 작품은 부조리한 상황 속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섬세하게 다루면서도, 문장은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안보윤의 소설이 동시대 단편들 가운데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피해자가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인간의 다면성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물들은 한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사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채, 작품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이 복잡하게 연결된 서사는 독자에 따라 쉽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전 작품을 떠올리며 페이지를 되짚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가족 간의 미묘한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을 힘들어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이해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 존재의 고통에 감응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날에는 종일 소설을 썼다고. 상처는 묻어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 책은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끝내 그 상처를 끌어안으려는 존재들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