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줌마, 바쁘지만 느린 수원에서 다정함을 배우다
아이들의 학부모 모임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커피 맛을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이 둘을 초·중·고등학교에 보내는 12년 동안 나는 여러 카페 문턱을 친정 문지방보다 더 자주 넘나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커피를 즐기던 사람이 아니었다. 커피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커피 칸타타’까지 작곡했다는 독일의 음악가 바흐만큼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커피를 접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 중독적인 매력에 서서히 물들어 있었다. 원두의 향, 톡 쏘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 그리고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까지— 이 검은 음료가 만들어내는 조용한 하모니는 단조로운 내 일상에 작은 숨결을 불어넣곤 했다. 사람들에게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와 시간 속에서 기억과 의미를 차곡차곡 작곡해 내는 하나의 문화였다.
오랜 세월 커피가 빚어낸 문화의 깊이는, 이 음료가 머물렀던 다양한 ‘공간’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에는 역사 속 커피 하우스들이 등장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문을 연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에서부터, 고종에게 커피를 대접한 손탁이 지었다는 손탁 호텔의 커피하우스, 그리고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현대의 카페 문화에 이르기까지, 커피를 사랑해 온 사람들의 역사는 장소와 시대를 막론하고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과거의 커피 하우스가 유럽 지식인들이 커피 한 잔 값으로 사회적 의식을 깨치던 공간이었다면, 오늘날의 카페는 현대인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잠시 숨을 고르는 작은 쉼표 같은 장소다. 대한민국 곳곳에 카페가 넘쳐나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역할 때문일 것이다. 커피가 시대를 건너 누군가의 하루를 붙들어주었듯, 요즘 내게도 조용히 마음을 품어주는 한 카페가 있다.
우리 동네, 성균관대 수원 캠퍼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카페들이 많다. 그중 동네 엄마들 입에서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 있다. 정확한 이름보다 ‘그 골목 카페’라고 더 자주 불리는 장소다. 누군가는 이곳을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공간은 성균관대의 흰 건물이 얼핏 보이는 큰 대로변에서 조금 들어간 작은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다. 해리포터가 킹스크로스 역의 ‘9와 3/4 승강장’을 찾으려던 소설 속 장면처럼, 카페는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더듬더듬 들어가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투명한 통창으로 보이는 카페의 내부는 겨우 테이블 3~4개가 들어갈 규모다. 우드톤의 따뜻한 인테리어, 숫자가 어우러진 작은 간판. 화려한 프랜차이즈 카페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 법한 장소이다. 그런데도 한 번이라도 들렀던 사람들은 이 카페를 쉽게 잊지 못한다. 시린 마음을 살며시 붙잡는 ‘사랑방’ 같은 따뜻함이 이 공간에는 있다. 특히 아침이면 그 온기와 향기가 더 뚜렷해진다. 좁은 골목을 채우는 볶은 원두 향과 함께, 카페의 노란 불빛은 그곳의 하루를 조용히 밝혀 준다.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 그 카페 골목을 지날 때면 원두를 볶는 냄새가 어김없이 풍겨왔다. 작가 이효석이 이야기한 낙엽 타는 향인지, 잘 익은 개암 냄새인지 알 수 없지만, 코끝을 스치는 그 향기는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그 고소하고 매력적인 향에 이끌려 작은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면, 카페 내부를 맴돌던 초콜릿색 안개 같은 따뜻한 기운이 나를 부드럽게 감싸곤 했다.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한 기분 좋은 원두 향이었다. 은색 기계에서 갓 볶아져 나온 구수하고 매캐한 커피 향은 특히 눈 내리는 겨울이면 더 풍부하고 진해졌다. 소복이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까만 아메리카노는 조급해진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했다. 친구와 소곤소곤 나누는 담소가 더해지면 그 일상은 더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그 카페를 가장 따뜻하게 만드는 건, 커피도 향도 인테리어도 아닌, 바로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카페 주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9시에 문을 열었다. 항상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내리는 그녀는 손님이 없을 때면 한 뼘 남짓한 구석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책장을 넘겼고, 손님이 몰리면 기꺼이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화려한 케이크도, 다양한 디저트도 없는 작은 카페지만, 이상하게 한 번이라도 들렀던 손님들은 이곳을 쉽게 잊지 못했다. 단순히 커피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을 우리 동네의 작은 ‘사랑방’으로 만드는 비결은 주인에게 있었다. 습관처럼 건네는 친절이 아니라, 이 공간을 찾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려는 태도였다. 아직 어려 보이는 그녀가 어떻게 매 순간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이곳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대기하던 손님들이 뜸해진 틈을 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일하게 됐어요?”
부드러운 검은 단발머리를 살짝 넘기며 나를 바라보던 카페 주인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수줍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훌쩍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 그곳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맛에 반해 커피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이 카페를 운영하던 고모 일을 잠시 도우면서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는데, 어느새 이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이 골목 카페를 지키던 예전 주인은 조금 더 나이가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다. 당시의 카페는 그 주인처럼 묵직하고 연륜이 깊게 배어 있었다. 사람의 공간은 가꾸는 이의 성향을 닮는다고 했던가. 지금의 카페는 현 주인의 열정과 성정(性情)을 따라 한층 더 따뜻하고 생기로워져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빛난다는 말처럼, 일하기 싫은 날에도 “일단 문은 열고 커피를 내린다”던 카페 주인의 표정은 언제나 눈부셨다. 하지만 밝은 양지 뒤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듯, 그녀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흔드는 무례한 손님이 있었다. 커피에 담은 진심이 순간 흔들리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힘들게 지켜온 공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며, 웬만한 손님의 무리한 요구도 웃으며 받아들인다고 했다.
“돈 몇 푼 아끼는 것보다, 이 공간의 평화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해요.”
그 말은 오래도록 귀에 남았고, 듣는 동안 내 안에서는 묘한 감정이 일었다. 젊은 나이에 주변 탓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터전을 지켜가는 그 청춘의 단단함이 눈부셔 보였다. 내 청춘 역시 저렇게 투명하게 빛나던 순간이 있었던가? 그 시절의 나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탓하며, 안 되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느라 늘 분주했다. 그렇게 강산이 몇 번 바뀌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깨달은 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청춘은 그때의 나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향긋한 원두 향기 속에서 현명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매일 아침 골목에 원두 볶는 냄새가 스며오면, 나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곤 한다. 그 속에 숨겨진 청춘의 자취가 아름다워서.
이 작은 카페의 불빛은 오늘도 좁은 골목길을 노랗게 밝힌다. 그곳에 한 번이라도 머물렀던 사람들이 단골로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커피 맛이나 가격,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골목 카페를 조용히 지탱하는 힘은 주인의 선한 마음, 커피를 향한 애정, 그리고 그 마음에서 스며 나오는 작은 진심들에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지치고 마음이 금세 까슬해지는 날이면, 문득 그곳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립다. 초콜릿빛 향기가 골목에 고요히 퍼지던 그 카페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쉬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