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1회 차
내 인생의 성공적 다이어트는 총 3회였다. 첫 번째는 하루 종일 교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고3 무렵 답답한 게 싫어서 라면을 혹독하게 끊었던 때다. 그 당시 된장 베이스의 라면이 유행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야자를 끝내고 돌아온 밤이면 그 라면을 참아야 한다는 게 참을 수 없이 화나고 힘들었다. 크게 살이 빠지지는 않았으나 먹을 수 없어 화가 났던 전날 밤과는 달리 아침에 속이 편안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두 번째는 스물두 살, 실연 비슷한 것으로 심적 고통을 겪던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줄넘기를 했다. 펄쩍펄쩍 뛰고 있노라면 힘이 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났고, 하루에도 몇천 번 씩 줄넘기를 돌려댔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살이 쭉쭉 빠졌고 분노 말고 체력이 늘어난 게 느껴졌다. 세 번 째는 결혼 전. 매일 친구들을 만나고 놀고먹고 한 몇 년 간의 생활로 살이 더덕더덕 붙어 체력은 바닥이었고 코골이까지 했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치가 않았다. 결혼식이라는 핑계(또는 이유)가 아니면 다시는 살을 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줄넘기만 신나게 해도 살이 쭉쭉 빠지던 20대 초반과 달리 하루에 만 번씩 뛰며 스마트 줄넘기로 전 세계의 사람들과 줄넘기 겨루기를 했는데도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먹는 걸 줄일 생각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살 뺄 거니까 서브웨이에서 빵 말고 샐러드로 바꿔서 아보카도를 추가해줘! 라는 부탁을 받은 구남친 현남편은 나의 샐러드를 보고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라며 한참을 웃어댔다. 런데이라는 어플을 추천받고 매일 달리기를 하자 아주 천천히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몸에 근육이 붙으며 성공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세 번의 다이어트 중 한 번도 마른 적은 없었고 다만 건강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달리기 들을 생각하며 나 다시는 살찌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열심히 했으니 먹고 싶은 것 좀 먹어보자라며 열심히, 즐겁게, 꾸준히 세상의 모든 음식을 섭렵했다. 그리고 행복한 뚱보가 되었다.
행복하면 그만이지 뚱보면 좀 어떠랴 싶었지만 나는 매일 건강과 멀어졌다. 밤에는 코를 골아 짝꿍을 힘들게 했고,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버거웠으며, 전에 입던 옷들이 하나하나 맞지 않기 시작했다. 옷이야 사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지만 넉넉한 옷도 금새 몸에 딱 맞아졌고 항상 몸이 편하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처 예상치 못한 건강문제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론이 매우 길었으나, 결론은 나는 내 인생의 4차 건강찾기를 시작한다. 아무리 계획을 짜고 마음을 먹어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 소용이 없으니 나를 길거리에 던지기로 했다. 말그대로! 길에! 던져두면!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짝꿍이 출근할 때 집에서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주면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는 것이 나의 야심찬 계획이다. 집에는 가야하니 어쩔 수 없이 걷게 되겠지.. 하하
그리고 오늘 마음을 단단히 하고 롱패딩을 껴입은 채 외옹치항 근처에 내려졌다. 집까지는 약 5키로, 발길이 닫는대로 바다를 따라 쭉 걸어 내려왔다. 마스크 안은 숨으로 더워지는데 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콧잔등이 얼얼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아침부터 이게 무슨 고생이냐 싶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는 동안 수없이 많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들을 발견하며 나는 이 걷기를 계속하리라 마음먹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등장하는 팟캐스트를 틀고 파도 소리를 끼워 들으며 모래와 언 눈을 밟는 시간. 파도가 겹겹이 쌓여서 밀려오는 해변, 담요를 깐 바구니에 강아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할머니, 우와! 와아아!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꺅꺅 소리치며 박수를 치는 아빠와 아들과 딸의 뒷모습, 길가에서 먹이를 찾는 개 두마리, 차가운 물에 둥둥 뜨면 발이 안 시려운지 궁금해지는 물오리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동네의 길고양이(무사히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포장지로 둘둘 싼 사과 같은 관람차들.
내일도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면서 건강해지리라. 애니웨이 걷기 1회차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