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지구 멸망 버튼
정신적인 고통은 왜 사람을 죽일 수 없을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사고로 인해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아픔은, 쉴 새 없이 가슴을 괴롭혀 숨을 거두게 만들 만큼의 충분한 고통이 아닐까 유추해보곤 한다.
한 순간도 견딜 수 없고, 상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강렬한 고통은 아니지만, 내가 겪는 물리적 아픔과 그로 인해 피폐한 마음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아프면 아픈 대로,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주는 주변인들도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대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면 나에게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더 이상 살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살아갈 수 없다면 사는 것을 포기할 선택지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선택지를 취하기엔 내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용기가 없다기보단, 언젠가 괜찮아질 거란 조각 같은 희망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증상이 최고조에 달할 때면, 눈을 질끈 감으며, 엄지 손가락으로 딸깍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하고, 지구를 폭발시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잃는 고통을, 그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안겨주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스크래치로 되돌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도덕적으로, 인간으로서 비난받아 마땅한 선택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은 느껴지지만, 아픈 동안은 이성적인 사고가 안되고 그저 그 상태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 지를 알게 해 주는 지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