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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 인터뷰 Mar 07. 2024

왜 공항 면세점 물건이 환불이 안돼요?

시카고 공항 면세점에서 벌어진 황당한 에피소드

때는 2008년의 여름이었을까. 나는 그날 시카고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고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두 시간쯤 남아있었다. 첫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빈 손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싶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한 면세점에 들렀다. 쭉 한 번 둘러봤을 때 가장 살만한 것이 초콜릿이었고 어느덧 내 양 손에는 사람 수대로 골라잡은 고디바 초콜릿 상자 여러 개가 들려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디바 초콜릿의 인기는 여전하다. 고디바는 우리나라에서보다 미국에서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기에 '많이 살 수록 이득'이란 설레는 마음으로 계산대 위에  열 개 남짓의 상자들을 내려놓았다.

직원이 "Do you want paper bags?" 라고 물었고

나는 "Yes, please." 라고 답했다. 그렇게 종이백 두 개에 초콜릿 상자를 담고 영수증도 안 빠지게 반듯이 접어 넣어주던 직원. 한껏 부푼 종이백으로 양 어깨가 무거웠으나 발걸음만큼은 가벼웠다. 그때 마침 몇 걸음 옆에 또 다른 면세점이 눈에 띄었고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그곳으로 향했다. 또 필요한 게 눈에 띌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몇 걸음이나 갔을까. 순간 거짓말처럼 고디바 초콜릿과 가격표가 내 시야에 떡하니 들어왔고 곧이어 망치로 머리를 쎄게 얻어맞은 듯했다. 방금 내가 산 초콜릿과 모든게 똑같았던 그 고디바 초콜릿은 내가 산 초콜릿보다 상자당 족히 7-8000원은 저렴한 것이 아닌가. 다시 보아도 역시나다. 나 바가지 썼네.

그때부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하며 나는 환불을 요구하기 위해 필요한 온갖 영어 표현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뒤죽박죽 떠오르는 단어들의 행렬에 정신이 없었다. 아냐 우선 간단하게 'refund'. 그래 refund라고. 차분하게.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발걸음을 옮겨 전에 들른 상점의 계산대로 향했다. 처음으로 공항 입국심사대를 거쳤을 때처럼 미국에서 환불을 요청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긴장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침 다른 손님은 없었기에 나는 떠듬대며 얘기했다.

"Excuse me, I want a refund."

이야기를 들은 직원은 흠칫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Unfortunately our manager is not here. We are unable to assist with refunds."

직원은 대략 이런 말을 한 뒤 중간 중간 말끝을 흐리며 빠르게 의미 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듯했으나 모두 이해하긴 힘들었으며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짧게 되물었겠지.

"What? Excuse me?"

"We can't refund you until our boss is back."

뭐? 매니저가 없으면 환불을 못해준다고? 이 세상에 그런 상점이 어디 있어? 그때의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지 토로했을테지만 직원들은 계속 "We can't refund you when our boss is not here."라는 말만 반복했다.

 "Call your manager."

"No, we can't."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뇌이는 이 직원들의 행태에 나는 기가찰 수 밖에 없었다. 매니저는 왜 못 부르는데?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동양인 앞이라고 없던 환불 규정까지 지어내는 거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당황스러움이 분노로 바뀌었고 어디 환불해줄 때까지 진을 치고있을테니 한 번 두고보라는 심정으로 계산대 앞에 무턱대고 서 있었다.

"I'm not leaving until you give me my money back." 이 얘기를 들은 직원은 내 뒤에 선 손님을 발견하고는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보더니

"Can you move over, so I can help with someone else?"라며 뻔뻔스럽게 답했고, 나는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하고 내게 무슨 일인가를 물어보았다. 이상함을 감지한 손님들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내 상황을 설명했고 그 중 몇 사람이 카운터의 직원에게 가서 왜 그러는지를 물었으며 직원은 그제서야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듯 했다. 물론 그 당시 나로서는 그 영어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이제서야 상황이 풀리나 싶었을 뿐이었다.

그 후에도 내가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자 내 뒤로 하나 둘 사람들이 줄지어 섰고 사태가 심각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제서야 다른 한 직원이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5분쯤 흘렀을까. 매니저라는 한 백인 남자가 오더니 환불을 해준다고 하였는데 정말 이때 영어 공부가 절실해진 순간이었다. '손해보고 억울한 일이 없게 이 악물고 영어 공부를 해야지' 라는 결심을 다지게 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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