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월
국제기구의 겨울은 적막하다. 다들 home country trip을 떠나고 사무실이 텅 비다시피 한다. 나도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휴가를 쓰고 나니, 노는 게 익숙해져서 출근하는 몸이 삐걱거렸다.
12월에는 제주도에서 자기 역사 쓰기를 마무리했다. 눈이 오는 바람에 두문불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글을 마무리하고 이제 좀 여행을 즐겨볼까 하는 찰나, 집에 남겨진 고양이가 사고를 쳤다. 펫시터를 연쇄적으로 할퀴고 물어버린 것. 나와 남편은 제주도에서 계획했던 2주를 못 채우고 서둘러 복귀했다. 피가 낭자한 펫시터분들의 사진을 보며, 멀리서도 머리를 조아렸다. 내 고양이가 사이코가 되어버렸나 걱정하며 달려갔는데, 웬걸 멀쩡히 애교를 부린다. 망할 녀석,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이른 복귀 후, 며칠 동안 식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꼼꼼하고도 야망가득한 계획을 세웠다. 일도, 개인적인 성장과 건강도, 관계에서의 기쁨과 보람도 놓치지 않으리라, 시간 단위로 주중 주말을 시뮬레이션해보며 과제를 넣었다 뺐다 하며 계획에 공을 들였다. 모니터링 지표마저 설정했다. 시작이 너무 과했나 보다.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는데, 강추위에 몸이 얼었는지, 옷을 많이 껴입어서 굼떠졌는지, 이 시절 기억은 느리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선명한 점이 되어 남는다. 작년에 썼던 자기 역사와 자전적 소설을 버무려 15화 분량의 “거짓인생과 헤어질 결심”이라는 소설을 썼다. 원래 계획은 썼던 글을 복붙 하는 거였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글이 산으로 갔다. 하지만 글이 나를 끌고 가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글이 나에게 질문하고(이걸 주면 주인공은 어떻게 할까?) 나는 진땀을 흘리며 답을 했다. 레몬처럼 쥐어짜지는 것 같았지만, 새콤하고 청량한 답변이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돌아보니 1월은 내 고양이의 지랄 맞음과 글과 나의 문답, 그리고 무모한 계획으로 채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