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고뇌와 패러다임 문제
장강명의 등단작이다.
성장이 멈춘 시대(그레이트 화이트 월=표백)에 20대 청년들이 느끼는 공허함을 그린다. 현재의 사상체계(자유민주주의로 모두가 평등하고, 수정자본주의로 돈이 유일한 측정가치가 된)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무력함.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좌절감. 소설 속의 청년들은 자살을 택한다. 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는 패배주의적인 자살이 아니라, 그래도 인생에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적극적으로 택하는, 사회에 대한 이의제기로서의 자살. 그래서 24시간 전에 자살 선언을 한다. 물론 그래도 사는 게 좋지 않냐는 안티테제(적그리스도, 농림부 7급 공무원이 된)도 있다. 안티테제는 항상 대충 살아왔는데, 그게 동력인가 싶다.
2011년의 소설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계속 증가한 자살. 2011년에는 자살예방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자살은 인원으로는 50대가 제일 많다. 인구 10만 명당 비율로 보면 10-20대에서 1위 사망요인이며, 70-80대에서 가장 높다. 노년층은 기본적으로 사망률이 높은데 늙어 죽는 사람도 많지만 자살하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이어 연달아 읽고 나니, 100년 전 일본의 청년들이나, 2000년대 한국의 청년들이 모두 굉장히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의 특징일 것이다. 메이지 정신을 지나 현대로 가는 길에 있는 청년은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로 힘들었고, 성장이 멈춘 시대의 청년들은 무력함과 좌절로 힘들어한다. "너는 전쟁의 시대에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거야.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어머니는 모욕당했어. 너의 증오는 불타오르지. 나가서 싸우면 되는 거야"
그것과는 별개로,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우리의 선조들은 봉건주의를 부수고 공산주의를 지나 자유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를 안착시켰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안락하게 착지한 나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 가능성이라도 일별 할 수 있는가? 내 상상력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어느 귀퉁이에도 닿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서 자주 쓰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쉽게 말해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인간의 활동이 조절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민주주의는 증진되어야 하고, 자본주의는 더 많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인듯하다. 가야 할 길은 분명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담론이 많은 사람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