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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적 Apr 06. 2023

나 역시 그녀 눈물 많음을 사랑해야 했다

나 역시 동생의 눈물 많음을 사랑해야만 했다.

동생 눈 아래 눈물점은 오랜시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왔다. 이름값의 과거를 나열하자면 사흘 밤낮을 다 써도 모자라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고들 하던데, 동생 표정은 항상 8시 20분인 것만 같다.


너무 잘 울어 웃는 모습도 울상이던 애가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땅콩과 수박이 나무에서 난다고, 사실 바나나는 밭에서 캐는 거라고, 속은 걸 알게 되면 가짜 눈물을 눈가에 대롱 다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던 무해한 동생.


어느 동물을 닮았다고 하면 '조용히 사라지라'고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ㅎㅎ)


그래도 그 애가 엉엉, 눈물을 뚝뚝 흘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내 눈 앞의 사적인 괴로움은 어떻게든 견디면 될 것도 같은데 동생이 겪는 슬픔을 얼른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 같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은 왜 나를 언니로 낳아서 애정이 이렇게 깊어지게 한 것인지, 왜 나는 동생을 이렇게나 사랑해서 괴로운 것인지, 내가 무력화 할 수 없는 동생 슬픔을 마주하면 무력해지고야 마는 것인지. 동생 덕후로 사는 삶은 이렇게나 고단하다.


어린 날 모모를 읽고 언젠가는 모모처럼 잘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동생이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감정의 가장 찌질한 부분까지 여과없이 털어내고나면 엉엉 울던 8시 20분의 동생은 사라지고 ‘그래도 언니, 모든 결정은 언니 너를 위해.’하고 말하는 다 자란 모모가 앉아있다.


이담에 아주 많이 나이들어서, 입었던 옷 대신 꼭 너를 순장해달라고 써야되니까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사랑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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