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죽어가던 무우를 꺼냈다.
엄마는 쌀뜨물에 참기름과 소금만 넣어 뽀얀 뭇국을 끓여주곤 했는데, 근 2년간 밥솥에 전원도 넣은 적 없는 자취생에게 쌀뜨물같은 고급 살림템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신 냉동실에 소분해둔 소고기를 꺼내 봉지째 물에 담가 해동하고 소금과 액젓을 둘러 참기름에 볶았다.
고기가 익기 시작할 즈음 채썬 무우를 넣고 볶다가 물을 넣고 끓인다. 집에서 먹던 담백한 국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어줄 만 하다.
취미를 요리라고 소개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드물게 그렇게 말하게되는 때면 머쓱해져서 ‘분기에 1회정도 하지만요.’하는 말을 덧붙이게된다.
취미라 하기도 머쓱한 이 행위의 좋아하는 부분은 재료를 깎고 썰고 다져서 삶고 볶고 끓이는 단순노동의 명료함에 있다. 날것의 재료가 다듬어지는 과정에 잡념이 사라지기도, 또 고민이 심연에 도달하기도, 이유모를 불안이 잠잠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다듬어진 것들이 순서대로 조화로운 모습이 되면, 그래서 음식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면 무언가 해낸 것 같다. 어지럽던 머릿속도 정리되어간다. 아니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대충 문제가 가벼워지는 기분이 된다.
전자레인지에 즉석밥 하나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을 채운다. 한 끼가 제법 그럴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