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변화하고 있다. 해가 쨍하게 드는 낮이면 소심한 봄이 기별을 보내오는 것도 같다.
언 땅을 깨고 나오는 봄동이 약이 된다는 것은 할머니가 알려주었다. 봄이 무르익으면 할머니는 부추를 사와 정구지 김치를 담가주곤 했는데, 고운 할머니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반들반들 광이 나는 손으로 맨들맨들 싱싱한 정구지를 버무려 입에 쏘옥 넣어주던 순간의 장면이 선연하다.
엄마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잡곡이 가득 든 찰밥에 청어를 굽고 마른 나물을 덖어주고, 봄이면 달래 된장이나 냉이국을 한소끔씩 끓여 밥상에 내놓았다. 여름이면 콩을 갈아 국수를, 비가 오면 밀가루를 뭉쳐 수제비를 빚어주는 엄마와 그런 찬들을 내 앞으로 끌어다주는 아버지가 닮은 방식으로 나를 길러냈다.
그렇게 제 때를 알고 땅에서 나온 것들이 쌓여 내가 된 것만 같다. 엄마의 여름 살구와 아버지의 가을 단감이 쌓여 일을 하고 글을 짓고 장면들을 기록한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여행을 떠나는, 그리고 봄의 생동을 눈치채는 나는 모두 그런 곳으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