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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소진 사이에서

제12화.두 얼굴 사이에서 얻은 균형의 중요성

by Alicia in Beta


성장만 좇으면 무너지고,
소진을 두려워하면 멈춘다.


스타트업에 있을 때, 나는 늘 성장을 좇았다.
지표는 끊임없이 요구됐고, 성과를 보여줘야만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더 빨리, 더 크게"라는 압박은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그 공기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매출 곡선을 지켜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왔다갔다 했고, 투자사와의 미팅 일정을 앞두고는 수십 번 자료를 고쳐가며 완벽을 추구했다. 동료들에게 '할 수 있다'는 기운을 심어주려 애쓰면서도, 속으로는 '단 1%라도 게을러지면 다 무너진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완전히 소진됐다. (처음엔 이게 번아웃인지도 몰랐다.)

출근길부터 하루가 끝난 것 같았고, 사소한 메시지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몸은 늘 무거웠고, 회의실 안에서 웃고 있어도 마음은 어딘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밤마다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닫고 나면 "내일은 조금 다를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아침이 되면 똑같은 무게와 한숨이 다시 나를 지배했다. 성과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늘어나도 나는 더 공허해졌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걸까? 잘하고 있는 게 맞는걸까? 마음 속의 질문이 고개를 들곤 했다.


돌아보면, 성장과 소진은 늘 함께였다.
빠른 성장 뒤에는 늘 탈진이 따라왔고, 그 탈진을 모른 척 밀어붙이면 어느 순간 더 크게 무너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성장과 소진은 선택지가 아니라, 항상 함께 오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걸.


나는 소진의 순간들 속에서 몇 가지를 배웠다.

⚖️ 속도의 균형: 모든 걸 전력 질주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에만 속도를 붙여야 한다.

⚖️ 시간의 균형: 멈추는 시간이 없으면 다시 뛸 수도 없다. 의도적인 쉼은 게으름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 의미의 균형: 숫자만 좇으면 어느 순간 공허해진다. Why와 의미, 성취를 연결해야 지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어려운 건, 나 혼자만의 소진이 아니었다.
팀이 지쳐가는 기색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야 했고, 동시에 외부에는 성장의 자신감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더 애써 웃고, 더 애써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립감은 커졌다. 결국 내가 인정해야 했던 건, 리더도 소진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소진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했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회복할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말은 쉽지만, 다시 한 번 스스로 되새긴다.

성장과 소진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같은 길 위의 두 얼굴이라는 걸.

성장만 좇으면 스스로를 잃고, 소진을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결국 리더십의 지속성은, 성장과 소진 사이에서 버티는 법을 배우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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