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인간학,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렵다. 물음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는 것 보다, ‘인간’이라는 말의 보편적 의미와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닌 자기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주체이다. 인간이면 누군든지 ‘고유한 삶’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유한 삶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자유의지대로 삶을 개척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주체이기에 환경을 상황으로 보고 무수한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기위해 살아간다. 만일 인간 각자가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주체일 수 없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자유가 무겁고 힘든 짐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인간은 자유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주체임을 확인한다. 왜냐하면 그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주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은 고유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고유한 특성들은 개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특성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특성들을 말하고 싶다. 인간의 고유한 특성들은 두 가지로 표현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자신을 보호할 권리’이다. 인간이 살아간 다는 것은 자유의지 이지만 자유의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무엇인가에 위협으로부터 추위로부터 다양한 것들에 대해 자신을 위해 자기 몸을 보호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은 악의 본질을 내포한다’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다. 이성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을 식별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만은 않다. 우리는 때로는 감정에 따라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만 봐도 그렇다. 수많은 전쟁과 학살, 살아가기 위해서 수많은 생명체를 죽이고 먹는 모습 등을 보면 악함에 의한 사회의 진보와 역사를 완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악함은 누구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어떠한 것이든 마다하지 않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마녀’에서는 다양한 내용들이 있지만 인간의 고유한 특성들이 무엇인지 적용해 보고자 한다.
어느 한 조직이 아이들을 납치해 뇌 공학기술로
‘폭력성’을 극대화 시키고 상처치유나 근육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성을 가진 아이들을 마땅히 통제할 방법이 없게 되자 윗선에서는 폐기처분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중 한 무서운 초능력을 가지고 있고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주인공 ‘구자윤’은 탈출에 성공하여 조직에 대한 계획적인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폭력성은 물론이고 공부, 노래, 운동 등 어느 것 하나 못하는게 없는 존재인 개조인간 주인공 ‘구자윤’은 인간과 다르게 폭력성을 극대화 받은 개조인간이다. 여기서극 대화 하였다는 것은 기존에 있던 악함에 대한 본질을 더 강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양부모집에 와서 구출 된 것도, 여고생에 삶도 모두다 그녀가 계획 하에 행동할 것에 불과하다. 이 무의미함, 공허함이 영화를 이루고 있다. 자윤은 폭력성을 부여받은 개조인간 이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도 악한 본성은 타고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극중 대사 속에서 “너한테 폭력은 본성이라고 말하지 않나”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것은 인간은 악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를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고 극한의 상황에서는 악한 성질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오는 당연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후천적 노력을 통해 악한 본성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악한 본성이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악한 본성이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도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악한 것이 따라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자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윤은 윗선에서의 폐기처분을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복수심이 있었기 때문에 폭력성을 통해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것에 싸우고 이겨낸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행위는 삶과 죽음 사이의 문제이다. 과연 자윤이 폭력적이라고 하여 도덕적이라는 것에 이름으로 비판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평범한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고 부당함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일상적 평범함이란 익숙한 모습의 악에서 찾고 있다 생각한다. 또 우리 존재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특성의 체계가 내재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존재들과 대립할 수 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전반부는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방황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후반부의 가서는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폭력과 살인을 행하는 마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윤의 정체성은 악함과 폭력성을 가진 괴물이다. 그것을 만들 사람들의 정체성은 이기심과 악함이 내포되어 있는 주체들일 뿐이다. 권력을 이용하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비밀병기를 만들고 필요에 따라 쉽게 소거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만드는 것은 자유의지 이지만 그 속에는 고유한
특성들이 일치하기에 결과물들을 만들고 세상을 구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이 인간들을 다루면서 시작한다. 인간 개인들의 존재의 체험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경험을 통해 통로를 발견하고 여기에 인간 이해의 근거를 찾고야 만다. 인간은 다양한 성격의 주체 즉 감각이나 생각이나 본성들에 의해 통합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궁금해 한다.
우리가 생각해야 될 점은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규정해 간다는 것이다. 영화 속 자윤은 자기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져 왔지만 자기 자신을 믿고 철저히 계획하여 삶은 규정해 나갔다. 거기에서 오는 계획은 악함과 자기를 보호한다는 것에 기초하였다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특성들은 무엇에서부터 왔고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만약 인간이 악함과 자기를 보호한다는 것이 고유한 특성이라면 우리는 누군가를 파괴하고 영원히 불안함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두 가지에 특성들은 자기 존재에 스스로 책임지며 삶을 수용하는 근본적이 자세이기에 우리는 항상 두려워하거나 경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보호를 위해 때로는 악함이라는 감정과 행동을 삼아가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게 작용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그렇게 살아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