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어릴 적부터 세상의 변화를 남다르게 느끼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개화 세력과 교류하며 진보적 사상을 지닌 인물이었고, 집안은 아관파천 이후 친미·친러 세력의 압박 속에서 피신을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가 큰 도움을 주었고, 안중근 가문은 대대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신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형성했고, 종교가 인간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깊게 내면화했다.
그 믿음은 그를 애국 계몽운동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을미사변과 고종의 강제 퇴위 같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목격하면서, 안중근은 계몽의 길에서 독립운동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 그는 단순히 민족의 독립을 꿈꾼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향한 인간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인물이었다.
그의 행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가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군을 생포하면서도 만국공법에 따라 그들을 석방한 사건은 그의 박애주의적 신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의병 부대의 위치가 누설되고 일본군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며, 일본 포로를 석방했다는 이유로 군자금 모으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안중근이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그가 포로들을 처형했다면, 재판에서 “나는 자객이 아니다. 국제공법에 따라 공정한 처벌을 받겠다”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 인류 전체의 정의와 평화를 고려한 행위로 자신의 길을 걸었다.
안중근의 신앙은 그에게 ‘인류애’를 일깨워주었다. 그는 일본을 절대악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포용과 관용은 그를 종교인으로만 머물게 한 것은 아니었다. 안중근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대의를 지켰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몸과 삶을 던졌다.
그는 “국가 앞에서 종교는 없다”라고 말하며, 종교와 국가주의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임을 드러냈다. 이는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신앙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지킨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종교와 민족주의를 모두 넘어선 제3의 길을 걸었다.
안중근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인간과 인류를 향한 깊은 사랑, 정의와 평화를 향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위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일대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어떻게 세상 속에서 실현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안중근은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신념으로 살아간 인간이었고, 시대의 폭력과 불의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참으로 뚜렷한 색채를 가진 존재였다.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정의와 사랑, 신념과 용기가 어떻게 한 사람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안중근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어떻게 그를 찬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