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개학이 싫어
어제는 매우 기분이 안 좋았다. 다음 날이 개학이기 때문이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짜증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거리는 눈덩이처럼 굴러오고 있는 것을 아는 데 그 일거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리고 그 눈덩이를 맞으면 엄청 아플 걸 알아서 짜증이 났나 보다.
어쨌든 개학이다. 1학년 어린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이 마냥 좋아서 팔에 다리에 매달리고 고개를 기대서 간지럽히고 난리가 났다. (1학기에 했던 '선생님의 몸을 만지지 않아요.' 교육은 완전 잊어버렸다.) 그래도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수업을 마쳐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중간중간 메신저로 업무 요청이 오는 것을 재빠른 탁구선수처럼 받아내면서.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2학기를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나의 업무, 그들의 업무, 학교의 행사 등등 을 업무 쪽지로 받고, 교무실에 내려가서 회의를 하면서 적고, 회의가 끝나면서 막간을 이용하여 예산 계획을 상의하고, 다시 교실에 올라와서 업무와 관련이 있는 외부 거래처, 학부모, 동료 선생님에게 나 또한 업무 탁구공을 서브한다.
시계를 언뜻 보니 4시 45분! 딸아이를 픽업하러 갈 시간이다. 재빠르게 학원 가까이에 있는 빈 곳을 스캔하여 주차하고 재빠르게 데려온다. 세이프! 그런데 떡볶이 가게를 가잔다. 이때부터 나의 시간은 한여름의 비디오테이프처럼 늘어진다. 다행히도 새롭게 배운 검도가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문구점에서 플라스틱 검을 하나 사주고 집에 왔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서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스님의 명상 영상을 틀어놓았다. 뭐 당연히 그대로 첫 부분 밖에 기억이 나지 않고 마지막 종소리에 잠이 깼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니 이제야 생각의 틈이 생긴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 하루 종종거리며 다닌 기록을 하고 싶어졌다. 물건을 정리하듯 생각도 정리하고 싶어졌나 보다.
요즘 다들 교사에 대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나도 사실상 어제가 개학이었지만 멈춤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집회에 참여하였다. 워킹맘(이런 프레임 단어 싫지만 불쌍해 보여서 써 본다.)인지라 시간이 없고, 아주 찰나의 시간이 나면 누워있기 바빴다. 피 같은 시간, 노력, 눈물 쏟아내기 싫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었다. 외면하기에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고, 불편해서 내가 어떠한 불이익을 받든 그날 나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그 마음의 죄책감보다는 나았다.
제발 나라 걱정, 사회 걱정 안 하고 살고 싶다. 그냥 그날 급식 메뉴가 뭔지,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 낄낄거리고 싶다. 내일도 정신없는 치와와처럼 종종거리며 다니다가 문득 따끔따끔 생각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