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요청하는 무언가를 나는 정말로 원하고 있을까?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욕구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그에 대해 반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가족 개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깊이 존중 하도록 만들고 정서적 유대를 깊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가족의 심리학[구판] P.288>
아이들에게 무언가 요구할 때 명확하게 표현 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나무랄 때가 있다. "얘들아 잘 시간이야~~ 잘 준비해"라고 외쳐놓고는 정작 나는 청소를 하고 있다던지, "엄마 놀아줘"라는 말에 '싫어'라는 말을 할 수 없어 요리조리 피하다가결국 엄한 일로 화를 내는... 내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엄마.
내가 아닌 남을 돌보는 것은 오히려 익숙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엄마. 누구나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싶다. 좋은 말만 하고 싶다. '세.상.에.서.가.장.좋.은.엄.마'의 꿀맛같은 자부심. 그리고 그 자부심 뒤에 숨겨져있는 엄마의 억울함과 분노.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엄마'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죄책감을 쓴다.
'착한엄마, 좋은엄마'의 가면을 쓰고 교묘하게 아이를 통제한다. 사랑이라 믿으며 아이에게 자신을 벗어나지 못할 덫을 놓는다. 엄마도 모르는 엄마의 욕구, 그 희뿌연 안개속에서 아이는 엄마의 욕구를 알아차려야만 한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아이는 안개속을 헤매고 또 헤매인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진짜' 엄마의 마음을 캐치하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는 아이. 여전히 어린시절 상처받은 아이로 살고 있는 엄마는 아이의 고분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의 욕구를 알기위해 고분분투 할수록, 아이는 '자신'의 빛을 잃어간다. 아이의 욕구를 통제하는 것 같아쓰기 두려웠던 말, '싫어', '안돼', '하지마'. '배려깊은사랑'이 그런건 줄 알았고, 조건없는 사랑은 'NO' 없이 다 해줘야 되는 건 줄 알았다. 속에서 열불이 나고해주기 싫어 죽겠는데도 차마 '안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어 억지로 끌려다니듯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진짜 내 욕구를 입에 올리며 아이의 욕구를 막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죄스러웠기에 아이가 원하는걸 들어주는 '좋은엄마'라도 되고 싶었다. 진짜 내 욕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건데', '나도 그만하고 쉬고 싶은건데'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다.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부모인 '나'임에도 몸만 커버린 어른인 나는 그렇게라도 아이에게 돌봄이 받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고보살펴주길 바랬다. 알아서 움직여주길 바랬고 스스로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멈춰주길 바랬다. 왜 나는 나도 모르는 '욕구'를 아이에게 알아차려달라고 강요했을까. '욕구'라는 것은 부끄러울 것도 수치스러울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나는 내 욕구를 드러내는것이, 표현하는 것이 불편했을까.
아이에게 무언가를 애둘러 요청하기 전에 자신의 진짜 욕구에 대해 생각해보자. 청소기를 손에 놓지 못하며 영혼없이 '이제 잘 시간이야'라는 말을 던지는 자신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 보자. '안자고 노는 게 꼴보기 싫어'인지 '나도 이제 쉬고 싶어'인지.나의 명확한 욕구를 스스로 알고 하는 말과 그냥 내지르는 말은 분명히 아이에게 다르게 와닿는다.
그렇기에 내 욕구를 들여다보고 명확히 표현만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행동은 금방 변화된다. '왜 우리 아이는 말을 해도 안들을까' 라는 식의 의문을 품고 있다면 자신이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되돌아 보면 어떨까? 모호하게 표현하기에 아이는 그 어떤 행동의 변화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엄마를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기에 엄마가 명확히 자신의 마음을 알려줄 수만 있다면 아이의 입장에선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엄마의 마음의 '진실'을 바라보고 그 진실을 명확하고 진실되게 표현해보자. 아이가 엄마가 아닌 자신을 보살필 수 있도록. 명확한 행동 가이드라인으로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엄마의 명확한 욕구와 솔직한 감정표현은 결국엔 엄마인 나와 아이, 모두를 자유롭게 한다. 뿌리깊고 처참한 내 억울함에 아이를 잡아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