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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12. 2018

영화 <우동>을 보고
우동을 먹으러 우동버스를 탔다

버킷리스트 한 가지를 이뤘습니다. 

“이곳에는 우동밖에 없어.”     

영화 ‘우동’의 주인공이 자신의 고향을 폄하하며 내뱉은 대사였지만 나는 우와!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너무 좋다. 우동밖에 없다니. 


어렸을 때부터 우동을 좋아했던 내게 우동이라는 영화는 흥분과 기대감을 가져다 주었다. 우동 면을 반죽을 하고 숙성시키는 장면들과 실제로 가가와현에 영업 중인 가게들의 특색 있는 우동들. 당장 저곳에 가서 우동을 먹어야겠어.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시간도 돈도 없었기에 나의 다짐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버킷리스트에는 ‘우동 먹으러 가가와현 가기’가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두 달째 몰아치는 일에 치이다보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 우동이야. 이럴 때는 그 우동을 먹어야겠어. 마음먹은 이상 맹렬한 행동력을 보이는 나는 친구를 설득했다. 우동이 유명하지만 그밖에도 구경할 곳이 많다고 조금 뻥을 보탰다. 실상은 평범하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운전을 못하는 우리는 우동버스 투어를 예약했다. 우동버스는 일단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유명하고 찾아가기 힘든 곳의 우동 가게에 우리를 내려다 주었다. 그러면 함께 타고 있던 가이드 분이 우동을 설명한 후 주문까지 해 주셨다. 원래 그 정도까지 해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탔을 당시엔 손님이 세 명 밖에 없었다!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야마시타 우동     

여행을 오기 전 조사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가 이곳에서 우동을 먹었고 하루키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여행기에 썼다고 한다. 이곳에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하루키의 사인까지 있는데, 이것이 친구를 설득할 때 한몫했다. 친구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엄청난 팬이다.     


야마시타 우동의 위치를 알리는 간판까지 있다.


야마시타 우동은 본래 제면소로 시작했지만 우동을 찾는 손님이 많아 한쪽에 우동 집을 차렸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박력 있는 하얀 김이었다. 시골집에서 보던 가마솥보다 두 세배는 커다란 솥을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께서 커다란 나무 막대로 젓고 계셨다. 곧이어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튀김 기름 냄새가 코 속을 자극했다. 그 냄새에 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평소 좋아하는 민물새우튀김과 작은 사이즈 우동을 주문했다. 370엔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호화스러운 우동 그릇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튀김이 우동국물 위에 올라가 조금 흐물거렸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동과 어울리게 해주었다. 국물에 불어 겉은 부드러우면서도 안쪽은 바삭한 튀김옷. 그 사이사이 작은 민물 새우의 고소한 살결이 톡톡 터지듯 씹혔다. 면은 한국에서 먹던 우동 면보다는 살짝 두꺼운데 불어서 부서지는 느낌이 아니라 속까지 탄력이 느껴지는 단단함이 있었다.      



나가타 in 카노카     

이곳은 국물이 유명한 맛 집으로 우동 국물로는 일본 내에서 탑이라고 한다. 일본 미식가 랭킹사이트에서 고객들의 투표로 1위를 해서 상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메뉴는 작은 그릇에 담긴 간장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가마아게 우동인데 쫄깃한 면발을 입안에서 씹고 있다 보면 다 삼키기도 전에 오물거리는 입술 앞에 다음 면발이 대기하고 있다. 다른 반찬은 없다. 파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맛있다면 다른 어떤 부재료도 필요 없는 것이다. 그냥 면과 소스만 있으면 될 뿐이다.     





다카마쓰 공항 안의 우동집     

우동을 먹으러 여행까지 가서 할 말은 아니지만 공항에서 먹었던 우동이 제일 맛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면발이 제일 쫄깃했기 때문. 


이곳에서 주문한 것은 카마타마 우동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동과는 약간 다르다. 익힌 뜨거운 면발 위에 생달걀을 올리고 간장을 뿌려 휘저으면 면발의 열기에 달걀이 설익으며 간장과 조화롭게 섞인다. 여기서도 역시나 그뿐이다. 다른 재료는 없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맛있다. 역시 면 요리는 면발이 중요하구나.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으며 함께 주문한 호박튀김을 깨물었다. 튀김옷은 바삭하지만 금세 부스러지고 고르게 익은 단호박이 부드럽게 부셔져 입안에 스며들었다. 와, 말도 안 되게 맛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 동네는 공항안의 식당마저도 이렇게 맛있는 건가? 우동을 두 끼 밖에 못 먹은 것이 아쉬워 들린 것일 뿐인데 이렇게나 맛있다니. 우동버스에서 이미 우동 면을 6인분이나 샀지만 이곳에서 생면을 2인분 더 구입했다.     

돌아와서 그곳에서 먹었던 우동들을 되새기며 구입해온 우동 면을 삶아 정확히 포장지 뒤에 써 있는 조리법대로 조리하니 금방 가가와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면발 하나하나 씹을 때마다 우와우와 하고 머릿속으로 몇 번을 감탄했다. 함께 들어있는 소스를 묽게 풀어 면과 함께 끓이기도 하고 진하게 만들어 찍어먹기도 하고. 어떻게 먹어도 면발이 금방 뽑아낸 것 같이 생생한 탄력이 느껴진다. 


여행에서 사온 마지막 우동의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우동’의 주인공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다른 것 다 없으면 뭐 어때. 이렇게 맛있는 우동이 있는데!


박강하 

방안에서의 뒹굴거림, 길에서의 커피, 여행지에서의 음식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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