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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노동들: 탈출과 몰입 사이

일이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이 필요할 때가 있다

by 소은성

나에게 일은 두 가지 결을 가진다. 하나는 끝이 보이고, 정리감이 있는 일이다. 정신의 과열을 식혀주는 물리적 노동.

다른 하나는 끝이 없고, 늘 새로이 갱신되는 일이다. 나 자신을 재구성하며 더 깊이 들어가는 정신적 노동. 이 둘을 오가고 있다.


1.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일의 끝남’이 있는 일, 현장 기반의 파트타임 노동


일에는 감각이 있다. 완결감(completion)도 그 중 하나다. 예컨대 에디터로 일할 때는 잡지나 사보가 인쇄되어 나왔을 때 완결감을 느꼈다. 물리적으로 명확한 끝이 있는 일에서 나는 심리적인 안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짧을수록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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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도착한 2월 이후, 나는 본업과 더불어 요식업계 아르바이트와 에어비앤비 청소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왔다. 둘 다 체력 소모가 적지 않지만, 공통점이 있다. 일이 끝났을 때, “아, 끝났다.”라는 명확한 감각이 남는다. 후회가 없는 퇴근이랄까? ‘더 잘할 걸’ 하는 자책 없이, ‘내가 해야 할 퀄리티와 양을 다 채웠어. 끝'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다. 주인이 내가 아니니, 앞일에 대한 고민이 없이 탈출이다. 탈출하고 본연의 나로 돌아간다.


프랑스 농장에서 보조 농부로 일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설가나 시인들이 일하는 동안 글쓰고 싶다는 욕망과 글감이 샘솟고 (퇴근과 동시에 쉴 생각만 들긴 한다고...) 고 하는 걸 봤는데, 나도 그랬다.


수백개의 구멍에 씨앗을 개수에 맞춰 넣는 반복활동, 끝에서 끝까지 허리를 굽히고 토마토를 따서 담는 반복활동....반복반복반복 속에서 사유는 또렷해지고, 감정은 정돈되었다. 물리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내 안의 어떤 과잉된 사유를 정지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달까?


매거진 에디터로 일할 때도 그랬다. 보다 재능이 있는 쪽은 기사 자체의 퀄리티를 높이는 일이었다. 현장 에디터로서 해야 할 몫은 했지만, 기사 쓰기보다는 재능이 부족했다...만, 알쏘냐. 기사만 잘 나오면 되는 것이었고. 돌아보니, 촬영 현장에서 오브제를 세팅하고 공간을 정리하거나 사람을 조율하는 일에 더 큰 집중과 몰입을 느꼈다. 후배 기자와 동반해 현장 조율을 코칭할 때도 더 없이 즐거웠다. 현장에서는 꼭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어서, 이런 상황의 해결을 알려주는 건 어렵고도 보람된 일이었다.


이또한 현장 기반 노동일까. 실재감이 드는 일이었다. 내가 세상 속에 실재한다는 느낌.


2. 내 전문 분야 — ‘더 잘하고 싶은’ 일. 생각이 끊이지 않는 일


반면, 내가 오래 몰두해온 분야는 완전히 다르다. 완결이 있을까? 심화와 확장만 있달까. 교육, 컨설팅, 코칭 등이다. 관계에 기반해 앎을 전달하는 일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겠다. 관계성이 없어도 되는 녹화영상 강의와는 다르다. 학습자와의 라포 형성이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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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식을 전달하고, 상대의 감각을 열어주는 일을 한다. 그룹 워크숍이든 1:1 코칭이든, 매번 같은 내용을 전하더라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 새롭게 구체화되고, 매 순간의 대화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상호작용의 활기가 중요하다.


무척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적일 때도 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일의 시작 전에 완벽하게 안정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일에는 ‘끝났다’는 감각 대신, “더 잘하고 싶다”는 감정이 남는다.


오늘도 글쓰기 수업이 아닌 다른 주제의 수업을 기획하면서 문득 메모에 적었다.

“수업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기 싫다’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

몸이 아픈 날, 글쓰기가 귀찮을 순 있어도,

수업하러 가기 싫다는 마음은 한 번도 든 적 없다.”


특히 글쓰기 수업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분야이지만, 그 외에도 내가 애정을 가진 주제라면 어떤 수업이든 기꺼이 몰입할 수 있다. 이런 일은 나에게 ‘전문성의 지속적 재구성’을 요구하는 노동이다.


읽고 쓰고 사람을 만나고 고민하고 (삶에서 사건을 겪고) 보고 듣고 (종종 갈등하고 대결하고) 하는 일이 큰 영향을 준다. 그러면 다시 시작되고, 더 정교해진다. 이런 마음이 이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그 개인의 인생에서 이제 그만 끝내야 좋은 일이라면 그에게 이 속성은 비극이겠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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