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색과 면을 그저 눈으로 따라간다. 몸과 마음이 버벅버벅댄다. 고장이 나고 화딱자가 나고 이상하게 움직이고 그러다 자유로워지고. 끝나고 나올 때엔 언제나 콧노래를 부른다. 세상의 긴장이 다 사라지고 자유로워진다. 1주가 지나면 다시 막막해지고는 한다.
그림 수업 이야기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그림을 그리러 간다. <다이버시티 드로잉> 수업을 듣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리기> 수업에 이은 심화편이다.
빠르게 파악하고 정의하고 분석하는 '읽기' '쓰기'의 기능과는 반대의 기능을 쓴다. 정의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는다. 판단은 금물이다. 에디터, 작가로 살아오면서 닦아온 가장 능숙한 기능은 접어두고, 써보지 않았던 기능을 꺼내 쓰자니 당연하게도 잘 안 꺼내진다.
흥미로운 것. 아무도 훌륭한 화가의 스타일을 따라하지 않기에, 그림에 자기 성격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테크니컬하지는 않아도 나다운 그림. 사람들이 각자 자기답게 그리는 걸 보는 게 정말 흥미롭다. 한번은 동료 수강생과 지하철을 타고 오며 서로의 다름에 대해 대화했다.
"뭔가를 다 안 보여주고 숨긴 느낌이 좋아요. 조심스러운 선도 좋고요."
"저는 잘 꺼내놓고 싶어요. 00님처럼, 과감하게요."
"제가 과감하게 그려요?"
"네. 사람 얼굴을 그릴 때 무척 조심스럽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신기했달까."
"사람을 그리는 건 겁날 게 없는데.."
"그래 보여요. 에잇! 하는 순간이 느껴져요. 힘있어요. 저랑 너무 달라서 한참 봤어요."
"저도 님처럼 꽃을 여리여리한 선으로 그리고 싶어요. 그런데 꽃은 너무 요소가 많고...조용해서 지루해.."
수업 기간 동안, 선생님이 해 준 말들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단순한 것을 깊게, 섬세하게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일 수 있다. 패턴이 명확한 것들.
하지만 요소가 많고 불규칙한 ‘자연’ 앞에서는 문득 긴장하게 되는 것 같다. 막막하고 지루한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걸 다 그려야 하나?”라는 부담이 있다면, 그 질문을 잠시 내려놔도 좋다.
자연을 바라보며 마음이 끌리는 한 지점, 한 가지 요소에 집중해도 괜찮다. 다 그려야 한다’는 생각 없이 그려보자.
오묘한 개성이 있다. 마음이 편안해질 때, 그 개성은 천천히 떠오른다. 개성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러니 ‘눈치’를 보지 말아보기. 어차피 끝까지 볼 것도 아니란 것을 안다.
호기심을 훈련하기.
낯선 것 앞에서 망설이지 말고, 궁금해할 용기를 가져보는 것.
일을 벌려보자. 항상 잘되는 건 아니지. 그렇지만 잘 될지도 모르잖아?
그리는 것은 대상과 대화를 주고 받는 것…
‘지루해’라고 느껴지는 것도 살짝 건드려보자. 처음부터 단정 짓지 말고, 느리게 친해져도 된다.
사고를 쳐야, 배울 수 있다.